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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여행 11 - 람세스 2세의 숨결 아부심벨

김현숙 2009-06-04 (목) 15:25 조회:1000

< 이집트 남쪽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의 권력욕에 놀라고 수장될 위기에서 이 위대한 유산을
조각내어 물 위로 옮긴 현대의 과학적인 기술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아침 10시 대단한 일출을 본 후 다시 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다합으로 향했다. 물론 7시까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투덜대는 운전기사와 약간의 설전과 심리전을 벌인 뒤에 말이다.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경
찰이 차를 세운다. 무슨일인가 싶어 긴장하는 순간 너무나 예쁜 미소(?)를 지으며 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기사에게 다합쪽으로 가는 경찰 간부가 있는데 좀 태워주지 않겠느냐는데 순간 기사가 우리 눈치를 본
다. 그는 이미 우리의 심기를 잔뜩 건드려 놓았으므로......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좀 전의 험악한 상황은 싹 날려버리고 방향이 같은데 태워주라고 약간은 폼을
잡으며 승낙하니 이 기사, 한껏 자세를 낮추며 고맙단다. 짜슥 그러게 진작에 좀 친절하지...

다합으로 돌아와 다시 하루종일 빈둥거리며 낮잠, 휴식, 맛이 손톱만큼도 없는 식사를 즐기고
밤 10시에 떠나는 카이로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밤새 9시간이나 달리는 버스는 영낙 없는 냉동차다.
게다가 중간 중간 사람을 태우고 내리고 검문하고 하다보니 차 문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 마치 학교
갔다온 울 아들녀석 맛있는 것 찾을라꼬 시종 여닫는 냉장고 문같다. 아고 아고 추버라 머리가죽 땡긴다.
자칫 벗겨지겠다.

드디어 아침 일찍 카이로에 입성, 구겨진 몸을 펴니 온 몸에선 사정 없이 우두둑 뼈들이 제 자리 찾아가
는 소리가 난다. 모두 무사히 제 자리로 돌아갔겠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박업소, 한국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는 장점 외에 좋을 것
이 하나 없었다. 가끔 지나치게 동포를 돈으로 보는 현지 민박 주인들이 있기 마련이긴 하지만.

일정에 맞춰 아스완으로 가야하는데 하필이면 '바이람'이라고 하는 이슬람의 큰 명절 연휴 기간이라 입
맛에 맞는 차편을 구할 수 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이 집에 하루 밤도 머물지 못하고(아스완 행 기차표 때
문에..) 저녁 8시에 출발하는 비싸기 짝이 없는 sleeping car표를 어렵사리 구했다. 편히 잠도 자고 저
녁밥과 아침밥도 맛있게 얻어 먹었지만 아! 아깝다 우리돈으로 무려 10만원이나 하는...

아스완에 도착하자 바로 카이로로 돌아가는 차편을 예약하고 역을 나서니 바이람 축제로 온 거리가
흥청거린다.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아이들 무리, 가장행렬을 하려는 듯 전통복장으로 치장한 어른들,
일단 기차역에 상주하고 있는 삐끼들과 협상하여 몇 군데 호텔을 둘러보고 그 중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멤 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퀴퀴한 냄새도 나고 썩 명쾌하지는 않으나 창을 여니 나일강 정경이 그대로
들어 와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호텔을 나와 재래시장을 통과한다. 시장 바닥이 온통 양의 피로 범벅이다. 아무데서나 양을 잡는다. 양
을 잡기 위해 건장한 남자가 양을 끌어당기니 이 놈은 제 죽을줄 알고 사력을 다해 반항한다. 그러나 어
쩌랴 도망가지 못하게 두 다리를 묶어놓았으니 세상에 가장 신성하고 거룩한 인간들의 손에 힘 없이 죽
어가야 할 한낱 양 한마리 신세인 것을.

세상에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종교적 의미이든 먹고 살기 위한 생의 의미이든 죽이지 못할
짐승이 인간에겐 없으니 말이다.

잠시 양의 처참한 말로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시 여행자 본연의 자세를 찾는다. 어느 나라든 재래시장
의 넘치도록 흥청이는 분위기는 사람을 흥분시키기 딱 좋은 광경이 아닌가?
어릴 때 보았던 수세미더미, 온 갖 잡동사니 물건들, 야채, 길거리 음식들, 엄연히 번호판까지 달려있는
관광용 마차, 거기에 전통 옷을 입은 사람 사람 사람들...

박시시를 요구하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은 참 당연하게 돈을 요구하는데 이 박시시라는 것이 있는 사람
들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자는 좋은 의미라고 하니 뭐라 할 수 도 없고 그렇다고 달라는대
로 다 줄 수도 없고 참 난감타 난감해.

잠시 옷 가게에 들러 질 좋다는 이집트 면 티를 몇 장 산다. 아들과 조카들을 위한거다. 상형문자 무늬가
특이하게 예쁜데 물이 빠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다시 역 앞까지 가서 제일 입맛에 맞겠다 싶은 피자집을 들어갔다. 피티피자집.
입에 맞지않는 이집트 음식을 먹느라 늘 느끼했었는데 간만에 먹을만한 피자를 맛본다. 참치피자는 특
히 입맛에 맞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현지인과 외국인에게 내어놓는 메뉴판이 달랐고 피자값을 두 배
나 비싸게 주고 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딜 가나 바가지가 특대형 바가지다.

점심 후 일행들과 함께 펠루카를 흥정하여 엘레판티나(코끼리)섬에 있는 박물관과 누비안 전통마을을
찾기로 했는데 여기서 우리의 왕 무식이 뾰롱났다. 책자에는 마치 누비안 마을이 한 곳 뿐인것처럼 나와
있었다. 펠루카 소년이 안내해 준 마을은 영 허술한 것이 무늬만 누비안마을 처럼 보였고 책에서 본 마
을 위치와도 영 달랐다. 워낙 이집트 사람들에게 많이 속고 바가지도 많이 쓴 터라 앞 뒤 재지도 않고 무
조건 화를 내면서 "너 왜 누비안 마을도 아닌 곳에 데려다 주느냐?"고 하니 이 소년은 되려 화를 마구 내
며 "무슨 소릴 하는거냐?" 배를 타기 전에 박물관 바로 옆에 있는 누비안 마을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는데
왜 이제와서 딴소리냐"한다.

영어가 딸리기도 하려니와 이집트식 영어발음에 생소한 우린지라 미처 내용 파악도 하기 전에 무식하
게도 오케이를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스완에는 5개의 누비안 마을이 있고 그 중에서도 1000년 된 Modern village 와 2000년
이상된 Old village도 있었다.
그 소년에겐 상당히 미안했지만 우리 모두 너무 화를 낸 터라 갑자기 저자세로 미안하다고 말하기 민망
하여 짐짓 모른체하며 계약을 파기하고 잠시 배를 탄 값만 지불하니 이 소년 머리 끝까지 뿔이 돋았다.
사실 우리가 몰라 실수를 했던 부분은 솔직히 사과를 했어야 했는데 카이로에서 택시를 탈 때부터 시작
된 바가지 전쟁에 너무 몰두하다 보니 모두가 사기꾼으로 보여 미처 사과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나보다.
이 아이도 처음엔 엄청난 가격을 불러 일단 바가지를 씌웠으므로(궁색한 변명인가?).

김이 샌 펠루카 관광은 그 정도로 접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스완 근처의 콤옴보로 가기 위해서
그러나 이 역시 무산되고 말았다. 우연히 일행이 된 여행 초보 이, 배 선생에게 차편 섭외를 맡겼더니 가
격이 비싸다며 무조건 깎다가 결국 현지 기사들에게 코 웃음만 받고 시간만 죽인 꼴이 된 것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깎는게 능사가 아닌데 말이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같이 해서 좋은 때도 있지만 이럴땐 혼자여야 하는데 싶어 맥이 풀린다.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호텔방에서 혼자 창 밖 풍경을 감상한다. 새벽 3시에 출발 할 아부심벨 투어때문
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함에도 영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밤의 나일강을 내려다보며 하염없는 감상에 젖
어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물론 새벽에 투어를 나갈 때의 내 눈은 영낙없는 퇴끼눈? 아니면 알콜중독
자 눈이다. 몰골이라니...

1월 19일 새벽 3시 30분, 아부심벨 투어를 떠난다. 가는동안 역시 버스는 냉장고에 잠은 부족하고 몸은
떨린다. 15인승 승합차에 한국, 홍콩, 일본, 러시아, 인도, 이집트까지 다국적 인종들이 서로 어색한 인
사를 나누고 이내 모두 새벽잠에 빠졌다. 덜덜 떨면서..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자칫 수몰 위기에 처해있던 람세스 2세의 유적지가 현대의 놀라운 기술로 인해
그 생명을 건졌다.
예전 두번의 이집트 방문으로 이미 룩소르에서 엄청난 신전 등을 보았던지라 이상하게도 그리 큰 감동
은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대단한 람세스, 위대한 람세스가 아닌가.
아스완 댐은 여엉 성에 차지않는다. 우리의 청주댐이나 합천 댐이 훨씬 볼만하다.

오후 3시까지 고픈 배를 진정시켜가며 투어를 마쳤는데 투어비에 포함되었다는 점심은 언제 주려나?
슬슬 화가 난다. 아무리 구경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옛말이 있지않은가? 새벽 3시에 아침을
주더니 오후 3시가 되어도 점심을 준다는 반가운 소식은 없다. 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 오니 그제서야
'당신들 점심을 사 오겠다'며 한 사람이 나간다.  배선생이 소리를 지르며 '필요없어 그만 둬'하며 흥분한다.

어찌됐든 이집트는 이래저래 골치 아프다. 때론 순수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외국인
을 상대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민간인이나 공무원이나 그들의 눈동자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참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야지.

일행과 늦은 점심을 먹고 저녁이 되어 헤어진다. 그들은 룩소르로 나는 카이로로..
같이 다니는 동안 참 많이 정 들었고 친 동기간처럼 지냈었다. 때로는 혼자였으면 하는 생각도 했었지
만 지금껏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부담 없었던 사람들도 처음이다. 그저 정에 이끌리어 한동안 동행했
었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나 역시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가슴이 허하고 울컹거린다. 한편 홀가분 하기도 하다. 복잡미묘한 여행자의 이중성, 같이 있어 즐거웠
고 같이 있어 번거롭기도 했다. 헤어져서 슬프기도 하고 헤어져서 홀가분 하기도 하다.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그리고 좋은 추억만 가득 안고 귀국하기를...
( 후에 한국에 돌아와 같이 했던 대전 사람들 모두 해운대 우리집에 와서 놀다 갔다. 하루 잠도 자고
비 오는 달맞이 고개 멋진 레스토랑에서 차도 마시고 저녁은 싱싱한 회로 대접을 했다. 그들은 좋은
여행 동지였고 참 종은 동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