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아늘한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양곤발 버스가 도착하는 이른 새벽에 세 아이의 아버지인 ‘아웅’은

나와의 인연을 맺기 위해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섰을 것이다.

“여보! 잘 다녀 오세요.” 아침도 먹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으스스한 어둠인 거리를 말 못하는 짐승을 끌고 나와 여기에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걸어서 숙소를 찾으려는 무심한 나보다는 방금 차에서 내려 추위를 못 견뎌 하는 아내에게 2,000짯으로 숙소로 안내해 주겠다며 접근한 ‘아웅’.

2,000짯은 나에게 큰 돈으로 여겨졌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그것을 이용했을 때

지불할 의사가 있는 금액보다 과도하게 등쳐 받으려고 하는,

길도 모르고 물가도 모르는 외국인을 곤욕스럽게 하는 액수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아직 마흔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노련한 사내였다.

그때 나에게는 외국인에게 바가지을 씌우며 돈만을 노리는 하이에나로 여겨졌지만......

“왜알알유고잉” “메이카라게스트하우스” “하우마치” “투사운전드짯!”

옆에서 재촉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재촉은 아웅에게 “오케이”로 메아리쳐 갔다.

“저 사람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바가지면 어때. 저 사람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자” 이런 취지의 말은 “오케이”로, 아웅은 마차를 끌고 와 우리를 태우고, 희희낙낙 메이카라를 두드렸고 인기척도 보이지 않자, 내가 “잉와게스트하우스” “오케이” 상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따각따각, 따가닥따가닥, 아웅은 본론을 꺼낸다. 호스카 필요하지 않나, 필요한데, 얼마냐, 만삼천짯이다. 옆에서 또 찌른다. 깎을려고 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좋다, 몇 시에 올 수 있느냐, 아웅은 점점 신이 난다. 원하는 시간에, 여덟 시 반 됐나, 됐다. 우리는 아웅의 도움으로 잉와로 무사히 들어갔다. 이제 아웅은 돌아가 아침을 먹으며 아내에게 으쓱하였을 것이다.

이 아웅이 우리를 처음으로 데리고 간 사원이 쉐지곤이었고

정문이 아닌 그들만이 아는 사원 옆, 상점 가게 통로로 들어가려는 데,

“슈즈” 아! 맨발로 사원을 들어가야 하는 그들의 숭고한 관습을 기억하고,

이럴 때 사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비닐 봉지를 꺼내,

신발의 보관으로 인한 도네이션을 교묘하게 비켜갔다.

이 봉지신공은 여행 중 매번 그 위력을 발휘했다.

모든 것을 해탈하여 부처가 된 부처가,

부처가 되고 싶고, 부처를 따르고자 부르짖는 사람들에 의해

철창 안에 누워 구금되어 있는 모습에

위대한 부처가 있고, 연민의 부처도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정녕 살아가고 있는 벗어나고 싶은 현실인가?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누워 있는 부처를 이 나라에서는 저렇게 가두어 두고만 있는가?

돌아 나오는 길에 종들이 몇 개 있는 곳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밍글라바” 합장하며 말하자, 할머니는 손을 내민다. 천 짯을 드렸다.

앞니가 많이 빠져 더욱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

이곳에서 아니 부처 속에서, 사람이 만들어 모신 부처상 속에서, 금빛으로 채색된 탑 가운데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 구석에서, 우리를 만났다.

“밍글라바” 외워 간 인사말 대신 내미는 손. 잡아드리지는 못했지만 천 짯을 드렸다.

환하게 무어라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우리는 아웅을 찾으러 바깥으로 나갔다.

아웅이 두 번째 데려간 곳은 이름을 알려 주지 않았다. 허물어져 가고 있는 전탑이었다. 바간의 모든 탑은 전탑으로 보인다. 거의 석탑으로만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탑 양식과 매우 차이가 난다. 전탑은 벽돌로 만든 탑이다. 벽돌은 돌 자체를 다듬어 만들기도 하고 흙으로 빚어 구어 만들기도 한다. 다양한 크기의 벽돌을 쌓아 탑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다 벽면을 회나, 진흙 등을 개어 바르고, 다시 색칠을 하여 매끄러운 벽면을 만들었다고 추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성(의성 탑리 인근)과 안동 지역(안동역 오른쪽 옆 자리, 안동댐 올라가기 전의 길 옆 등)에 대여섯 개의 전탑이 남아 있다.

우리 불상과는 확연히 다른 이마 부분이 넓고 턱 부분이 좁은 역사다리꼴 얼굴, 부드러운 초승달 눈썹, 위로 올라간 눈꼬리, 마름모꼴 코, 입술의 양쪽 끝이 위로 올라가 있으며,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의 두께가 두꺼운 것을 주목하여 보라. 그리고 목이 거의 없으며, 과장된 귀 모양과 손가락의 길이가 유난히 긴 수인의 모양과 결가부좌한 발의 평평함도 주목하여 봄 직하다.

감은 듯 뜬 듯, 아래로 향하고 있는 부처님의 시선은 어느 곳에 존재하는 무량한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단아하면서도 조용한 기품이 은은히 서려 있는 엄숙한 자세로, 저쪽 언덕의 세계를 구현하는 품격 있는 불상이 아닌가?

실제 탑을 쌓은 사람들은 벽돌 쌓는 기술자들이겠지만, 전세에서 이어받은 지위와 부가 바탕이 되어 자신의 번뇌와 깨달음의 수준만큼의 크기로 만들어진 갖가지 규모의 탑들로 상징되는 현세와 지금의 지위와 부를 이어이어 유지하며, 어리석은 중생으로서가 아니라 해탈의 경지를 못내 갈구하는 내세에의 열망으로 가득찬 영적 존재로서, 자신의 지위와 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경비를 내어 기술자를 동원해 자기만의 이상의 세계를 구축하려 한 진실한 한 인간의 눈물의 결과가 탑이 아닌가?

이 때, 탑을 둘러보고 있던 아내에게 사진의 여인이 말을 붙여 온다.

어디서 왔느냐, 저 앞 쪽 나무 밑, 마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왔지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코리아, 안녕하세요, 어라? 안녕할까요? 언니, 오빠. 뛔야다 원따바래, 초래, 칫대, 에헤라 외워간 미얀마말, 영어 범벅이 된다.

사실 가장 요긴한 미얀마말은 반갑습니다. 얼마냐, 비싸다, 깍아다오 등의 미얀마말이 아니라 “에잉다 배흐마레”이다. 이 말을 듣는 모든 미얀마 사람들은 갑자기 친절해지기 시작하며 어떤 이는 직접 우리를 모시고 그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탑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내부의 좁은 통로를 통해 탑 위로 올라가니 따라갈 밖에. 높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평원이 내려 보이고 책에서 보았던 탑들이 곳곳에 보인다.

단체 관광객이나 배낭여행자들이 자주 들리는 탑에는, 아니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관광 가이드나 마차 투어를 할 때 마부가 중점적으로 데리고 가는 탑에는, 대개 이 탑들은 주도로에서 접근이 비교적 쉬운 곳에 위치하며 탑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상당한 건립내력을 가짐과 아울러 내부의 부처상들이 영험한 탑에는, 붙박이 해설사(???)들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 탑과 같이 한적하고 사람이 드문드문 찾는 곳에는 한 두명의 여인네들이, 그 이름이 가이드북을 장식하고 있는 일출과 일몰이 볼 만한 대형 탑들에는 각급 학년에 해당하는 소녀들과 소년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이중에 영어를 제법하는 소녀, 소년들은 가끔 외국인들의 귀염을 독차지하며 곧 그들의 목적-대개 엽서, 손으로 놓은 수가 있는 천이나 그림들을 사 주기를 원한다.-이루기도 한다.

이름을 피차 물어보고 대답해 주었지만 그녀도, 지금 우리도 다 잊어 버린다. 어쨌든 탑을 내려오니 아내에게 자신의 수놓은 보자기를 보여 준다. 왜 이리 귀찮게 하는지. 아내는 나에게 1,000짯을 주라고 한다. 보자기 값을 물어보고 그것을 사줄걸, 왜 그때 돈만 불쑥 내던졌는지. 왜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짓을 했는지.

그러나 그때는 “내가 이렇게 조금의 돈으로 그들을 도운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개선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의존적이 될 것이며, 나만 좋다고 도우면 뒤의 여행자들은 어떻게 하는냐.”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교조적 생각에 구걸하다시피 하는 도네이션 요구나 억지로 떠밀리는 물건사기에 극히 부정적이었고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하였다. 일정 부분 이 문제는 모든 여행자 겪는 공통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의 하루하루의 실존을 몰각한 극히 이기적 여행자가 아닌가? 그들의 그 치열하고 절박함을 경멸하고 무시해야 문명적 윤리의식을 지닌 선진 교양인인가? 도덕과 양심과 체면과 부끄러움보다 오늘의 하루하루 실존이 앞서는 삶 앞에서 무엇이 정답인가?

 부파야 사원 밑

 부파야 사원 앞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