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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황당한 일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일반)

Huh-Jong 2014-11-05 (수) 11:30 추천:0 조회:1067 220.xxx.91

총회의 진한 감동을 간직한 채 애월의 봄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5시 반에 일어난다.
전등불도 못 켜고 짐을 챙겨 어두운 바닷가 언덕을 올라 우여곡절 끝에 7시경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시외버스를 타고 성판악에 도착하니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기온이 뚝 떨어졌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 영하의 체감을 느낀다.
캐리어를 휴게소에 맡기고 김밥과 식수를 준비해 8시 20분 한라산 산행을 시작한다.

숲 속에 들어오니 바람을 막아주고 가끔씩 햇빛도 난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쑥박 대피소,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며 산행의 페이스가 붙는다.
곧장 진달래 대피소를 향해 꾸준히 걷는다.

단풍은 거의 다 떨어져 가지만 마지막 잔엽의 색상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고집한다.
진달래 대피소 조금 아래에서 최병완 부회장, 탁기주 서울 신입회원 내외분을 만난다.

탁기주 회원이 따뜻한 컵라면을 사 오셔서 일행은 점심을 나누어 먹고
커피도 마시고 사과까지 황제 식사를 했다.

대피소 안내판 기온이 0.6도, 바깥 기온과 거센 바람을 생각하면 정상의 날씨가 걱정된다.

이제 정상까지는 2.3km 마지막 피치를 내본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보지 못했던 눈 상고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자꾸 길을 막는다.

오늘 아침 한라산에 첫 눈이 내린 것이다.
한라산 첫눈은 구상나무와 바위 등에 내려 앉아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그러나 마지막 200미터는 마나슬루의 그것과 비슷하다.
몸을 가누기가 힘든 세찬 바람이 때린다.
얼굴이 얼얼하고 반 장갑을 낀 손가락 부분이 마비가 온다.

정상에 도착하니 백록담 증명사진 찍는데 줄을 여야만 했다.
아직은 단풍을 생각하고 가을복장을 한 등산객들은 영하의 추위와 거센 바람 속에 줄 서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지만 예까지 와서 인증샷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가끔씩 혹독한 시련을 거쳐 더 진한 감동의 백록담을 열어 주는가 보다.
사실 이런 날씨의 정상 경험은 흔치 않을 것이고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엄청나고 황당한 사건이 터진다.

옆사람의 사진을 찍어 주다가 내 휴대폰을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데크 사이에 빠진 것이다.
공원이 자연 보호와 탐방자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발판 데크는 철 레일 위에 두꺼운 나무를 전기 드릴로 보드를 연결, 못을 빼서 나무를 들어 올릴 수 없고 나무 사이가 좁아 손가락 만 겨우 들어갈 공간 아래 삼십 센티 깊이에 빠졌다.

내 생각에는 실수로 백 번을 떨어뜨려도 한 두 번 들어갈까 하는 일이 이런 혹독한 추위에 백록담 정상석 바로 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탁기주 회원께 부탁 공원 관리소와 통화한다. 정상 비밀초소의 직원을 찾아가 부탁 하란다.
그 분과 함께 집게와 빠루, 드라이버 같은 장비를 가져와 몇 십분 노력했는데 허사다.

데크 판은 뜯을 수 없고, 나무 사이는 휴대폰을 세워서 들어갈 스페이스 뿐이고, 아래 공간은 다 막아 놓아서 옆이나 앞뒤로도 빼 내올 방법이 없다. 다시 가서 긴 집게와 철사 용접봉 두 개를 가져와서 두 손으로 용접봉을 조정하여 전화기를 집어 올리다가 떨어지기를 몇 번 했다.

그러다가 여기서 기적이 일어 난다.

그런데 왜 기적이란 표현을 썼느냐 하면, 줄을 서 있는 수십 명이 그냥 보고만 있지 도움이 안 되는데(?) 한 분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손이 어는데도 맨손으로 강한 집념과 집중으로 도와 주신 결과이기 때문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집중하고 노력하면 해결이 된다는 말일 게다.

사실 나는 핸드폰이 데크에 빠지고 아래 위 옆이 막힌 상황과 위로 올라 올 수 있는 공간을 확인하고는 거의 포기한 맨붕의 상태었다. 그런 절망을 천사같은 한 분이 자기일 처럼 강한 집념과 집중으로 건져 올렸으니 기게 기적이 아니고 무었이 겠는가?

얼마나 고마운지?
사진을 같이 찍고 명함을 건네고 그 분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하산하여 귀가 하면 꼭 고맙다고 인사 해야지 몇 번이나 다짐한다.

그런데 또 다시 황당한 일이 생긴다.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쓰다가 이 분께 인사 드리려 전화기를 열어보니 통화 기록이 다 날라 가 버린 것이다. 이 분이 내 전화기로 자기 핸드폰에 전화해서 남긴 것인데 비행기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부 삭제를 해 버린 것이다. 무슨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정상에서 거의 한 시간을 소비하다 보니 비행기 시간이 걱정이 되어서 뛰다시피 두 시간 만에 성판악에 올 정도였으니 정신이 없어 저장을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저 사진에 흰옷을 입으신 분인데 혹시 이 글 보시거든 꼭 연락을 주십시오. 바로 전화 못 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한라산, 참 많은 사연이 있는 산,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내 나름 내편으로 해석해 본다.

“이런 악천후에서 한 시간을 백록담 정상에 머물게 해 주신 것은 나에게 백록담의 정기를 듬뿍 받아 가라는 산신령이 뜻이다” 라고….

Huh-Jong 2014-11-05 11:47	그런데 또 기적이 일어 납니다. 핸드폰을 꺼내 주신 분이 제게 전화를 주신 겁니다. 저는 매일 6시부터 10시까지 헬쓰클럽에 가는데 이시간이면 제가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을 일이 있어서 안 나갔기 때문에 전화를 받게 된겁니다. 이분은 안익현 목사님으로 지금은 사이판에 선교 일을 하십니다. 다음주에 사이판으로 돌아가실 예정 인데 우리 회원님들 사이판 가실일 있으시면 이분과 연락 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저하고는 계속 연락 예정임) 안 목사님은 남의 곤경을 보면 참지 못하시고 끝까지 도와 주시는 성격으로 현지에서도 타이어 펑크 현장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소매 걷고 나서서 도와 주시며 그들과 친교를 맺고 게시 답니다. 목사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허 종

Han-Dongho 2014-11-05 13:03	고생이 되시긴 해도 한라산의 첫 눈꽃을 보셨군요! 넘 아름답습니다. 암튼 건강하게 돌아가셨다니 안심이 됩니다. 좋은 경험은 다 하시고 가신 것 같아 마음 뿌듯합니다. 궂은 날씨에도...

Kwon-Nayeun 2014-11-06 22:57	기적이 연달아 일어났군요 ^^

Son-Hokoong 2014-11-07 08:11	저도 올해 3월4일 봄을 맞이하여 집사람과 함께 한라산 등반을 봄옷을 입고 성판악에 도착하여 출발할때는 날씨가 괜찬았는데 사라오름을 올라가면서 날씨가 흐려지면서 잔비가 내리더니 진달래 대피소 가기전부터 잔비가 눈으로 바뀌어 고도가 높아지면서 세찬바람과 함께 사정없이 얼굴을 때려서 백록담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집사람이 끝까지 가자고 해서 가기는 갔는데 손가락 동상걸릴까봐 마음졸였던 기억이 납니다. 관음사로 내려오면서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큰 일 날뻔한 일도 있었구요. 아뭇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높은 한라산, 준비 철저히해서 가야겠더라구요.

Son-Hokoong 2014-11-07 08:18	그리고 어제 "인터스텔라"라는 영화를 집사람이랑 봤는데 영화 배경 시대가 지금보다는 한참뒤를 가상해 만든 영화같은데 대사중에 "요즘 사람들이 자기 가족들만 소중히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꼽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대사가 나와서 세상이 점점 그런쪽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만 아직은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셔서 그래도 우리는 좋은 세상 살다가 갈 수가 있겠지요.

Chung-dongjin 2014-11-07 09:42	악업은 불행을 낳고, 선행은 기적을 낳는다.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Eum-Jaeryang

2014-11-10 03:44

그추위에 다녀오셨구만요 제주도 날씨가 워낙 이렜다 져렜다하는거니까
결국 성판악 - 백녹담- 다시 진달레 언덕을 거쳐 오셨구만요
사실말이지 거기에서 관음사로 내려오는 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어째던 좋은 산행을 축하합니다 함께하신분들도요
내일나는 중국의 총회에 다녀오겠습니다.


허종	엄 고문님 중국 총회 잘 다녀 오십시오.	11/10 12:01

LeeJungHo 2014-11-11 03:05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겪으신 일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경기지부 이정호 올림

Kim-sungkil 2014-12-11 09:29	대한민국 반대편 보고타에서 글을 보았읍니다. 이곳에는 도착 하는날부터 계속 비가 조금씩 오고 있읍니다. 기적이 기적이 낳은군요. 정말로 예기치 않은일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 같읍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읍니다. 보고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