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닥에 누워 밤을 보내는 현지인들-아마 기차를 기다려야 하나보다>

<안개속으로 달려야 할 짚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탄 세 대의 작은 지프는 길을 떠났고 운전석 옆의 나는, 새벽길임에도 잠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앞차의 브레이크 등만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으로 길을 내어주고, 마주오는 차의 헤트라이트 불빛에 멈칫멈칫 숨이 멎는 듯,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길위에서 긴장은 극에 달했었다. 내 기억에 한 시간도 채 못간 즈음, 앞차가 서고 우리가 따라 차를 세운 순간, 다급한 음성이 들리고 사고를 직감했다. 급하게 뛰어내린 광경에는, 아! 사람이 차밖에 내동댕이쳐져 있는데 꿈쩍 않는다. 온 얼굴이 피범벅이 된 두 분이 길바닥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앞장서서 달리던 선두 차가 마주오던 대형트럭과 부딪치는 사고가 난 것이다. 차안은 두 사람인가. 끼여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난, 뭘 해야하나, 이럴 수가? 어쩌나, 누가 우리를 도우러 올 수 있을까? 우왕좌왕, 난 55년을 살면서 인사 사고를 가까이서 당하는 게 처음이었다. 내가 덮던 침낭을 들고 달려와서 차에 낀 여자 분에게 덮어드리고, ‘어떻게 해드릴까요? 조금만 참으세요.’ 피를 흘리며 서 계신 분에게는 좀, 누우세요‘ 했던 기억이 난다.

지나던 차들이 서고 경찰이 와도 응급차는 아예 나타날 생각을 않고, 몇 시간이 지나도 그놈의 안개는 꿈쩍없이 우리를 감싸고 놓아줄 줄을 몰랐다. 난 화가 막 났다. 여행 가이드북에 왜 1월의 인도 안개에 대해 한마디도 없었을까? 무려 여섯 시간을 찬 안개비를 맞으며 공포와 충격에 떨었고, 낯선 국도 길위에 모여던 인도인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눈물을 흘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짧은 순간에 다시 올 수 없는 먼 길을 가시는 두 분을 무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 볼 용기조차 없이 멍하니 내려다보며 ’내가 여기 누워 있을 수도 있었는데, 이 사람이 여기 누워 있구나, 우리의 생과 사는 너무나 순간에 나누어지고 그 갈래길은 진정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하며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인도인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모두 초연하다 했던가? 뜻하지 않게 우리는 인도에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그 간극을 뼈져리게 체험하면서 그가 떠나고 내가 남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인도의 수많은 신이시여, 이도 당신들의 뜻이었던가요. 나의 생존에 감사드려야 하나요. 그의 죽음에 당신을 원망해야 하나요.‘ 오! 신이시여~~~

<인도의 국도 모습-중앙선을 무시하고 막 달리는 것이 보통이다>

아우랑가바드 동굴여행에서 만나서 함께 카주라호로 움직이려했던 학교 선생님 몇분이 앞차에 타셨고 그들이 모두 다친 상황이었다. 나는 죄스러움으로 난감했다. 그나마 우리가 탔던 차에 다치신 분들을 태우고, 아들이 병원일을 책임지고 오던 길을 돌아 달려가서 웬 종일 낯선 병원의료진과 씨름을 하는 수고를 해주어 조금이나마 미안함이 가시는 듯한 위안을 가지기도 했다. 함께 여행하자 데려온 나이기에 낯선 곳에서 힘든 일을 맡긴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길러온 아들의 영어 실력이 낯선 곳, 뜻하지 않은 사고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동시에 동분서주하며 가족과 떨어져서 역할을 다하고 혼자서 먼 거리의 다른 도시의 숙소로 밤늦게 찾아온 아들이 퍽 대견했고, 힘들었겠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긍정적인 면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 이틀을 카주라호에 머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너무 혼란스럽고 힘들었지만, 큰 사고로 지역신문에 1면기사를 장식한 상황이라 만나는 인도사람들마다 우리를 붙들고 ‘I'm sorry, Are you o.k?'를 연발하며 안스러워하는 따스함에 손을 마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도여행 이야기를 서바스 여행기에 올리고 싶었지만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늘 가슴 아파서 미루어 두었다가....또 다시 1월이 다가오니 먼저 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빌고, 그 분들의 마음이, 여행을 사랑하는 우리 회원님들에게 가장 잘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되새김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