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의 해마(海馬) 한 마리

오늘은 전국의 온도가 영하로 뚝 떨어졌다.

크리스마스 캐럴마저 울려 퍼지니 문득 지난여름에 방문했던 카리브 해의 더위가 그리워진다.

그 무더위 속에서 해마(海馬) 한 마리에 100불을 지불한 멍청했던 내 모습이 청옥색의 캐리브 바다와 함께 떠 오른다.

손가락만한 말린 해마 한 마리에 100불을 지불하다니!

물가가 싼 온두라스에서는 100불이면 진짜 말(馬)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날은 날씨가 무더웠고 강렬한 카리브의 태양빛을 피하고자 나는 검정색 짙은 썬 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우리 크루저의 관광객 일행을 태운 버스가 열대우림속 바닷가를 달려

Punta Gorda 마을에 들어서자

새까만 꼬마 녀석들이 달려와 손을 내밀었고

손에는 조개껍질로 만든 장신구와 해마가 들려 있었다.

관광객에게 이런 기념품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간다는 가이드의 말보다

새까만 손으로 물건을 내미는 한 녀석의 해맑은 눈빛에 매료되어 나는 선뜻 해마를 집었다.

‘원 돌라, 원 돌라.’(1 불이예요, 1불)

해마 다섯 마리를 집은 후 1불짜리 다섯 장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버스에 올라 돈을 세어보니

그 애에게 준 1불 가운데 한 장이 사실은 100불짜리였다.

미국달러화는 액수에 관계없이 지폐의 크기가 꼭 같다.

나는 검정색 썬 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그 애가 주는 내 어릴 적 이미지에게 서슴없이 내가 가진 것을 건네주었던 것이었다.  

온두라스의 이 로아탄(Roatan) 섬 아이들은 조개껍질을 모아 장신구를 만들고

해마를 잡아 햇빛에 말려

관광객에게 팔아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고 있다.

크루저가 이 섬에 자주 입항하는 것도 아니고

관광객 모두가 이런 기념품을 사는 것도 아니므로 섬생활이 그리 쉬워보이지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책상위에는 철사 줄로 밭쳐놓은 해마가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몸을 흔들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 해마를 볼 때마다
로아탄 섬의 그 까만 녀석이 내게서 받아간 100불짜리를 앞에 놓고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영웅담과 
카리브의 별빛 찬란한 밤과
그애 부모들의 자랑스러운 미소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녀석은 동양인을 볼 때 마다
해마 한 마리에 100불을 주고 간 한 동양인 관광객을 떠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