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형제의 나라 터키서바스 6

김영숙 2006-07-29 (토) 21:07 조회:1582

형제의 니라 터키서바스 6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집안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쓰라고 하고는 집주인 남매는 출근하고
객만 3명이 남았다.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 안을 뒤져보니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써잔은 그저께는 유방암 수술한 어머니 병간호하러 갔다와서 자정이 넘도록 서바스회원들과 만났지, 그다음 날은 3명의 식객을 데리고, 보스포러스 해변에 있는 친구아파트에 가서 저녁해먹고 놀다가 밤1시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오늘 아침 새벽에 일어나 출근했지.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비록 서바스 손님이지만 아들같은 회원을 위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려 줄 수도 있었는데...
짐이 부엌에 있는 내게 와서, ‘ 어제 당신한테 저녁밥을 너무 잘 얻어 먹었기 때문에 오늘 아침은 제가 식료품점에 가서 장을 봐 와서 전통적인 터키식 아침을 차려드리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자구나.‘
게으른 미남 마이클이 그제사 눈을 떴다. 우리 둘이 쇼핑간다고 하니 자기는 그 동안 샤워하겠다고 했다. 아파트 근처에 여러가지 식재료와 생필품을 갖춰 놓은 제법 큰 동네슈퍼가 있었다. 과일 쥬스 1000cc, 치즈, 올리브, 에크메크(터키식빵), 토마토 약간을 샀다. 짐이 돈을 지불해서 내가 짐에게 돈을 주려고 얼마냐고 물으니 얼마 안되요. 괜찮아요.' 하면서 사양했다. 계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한 3,000원, 미국 돈으로 3달라정도였다..--터키의 음식물가가 싼데 또 한번 놀랐다.
짐은 능숙한 솜씨로 차를 끓이고 토마토와 오이로 샐러드를 만들고, 빵과 치즈를 자르고 주인의 냉장고 안에서 잼과 버터를 찾아 내어 그럴싸한 아침 상을 차렸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오는 베란다 식탁에는 잘레의 남자친구가 사온 보라색 꽃이 꽂혀 있고, 치즈, 잼과 버터, 체리쥬스, 에크메크, 검은 올리브, 그리고 토마토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나와 마이클이 식탁에 앉아 있으니, 짐이 차주전자를 들고 와서 우리 앞에 놓인 금테 둘린 예쁜 유리잔에 불그레한 차이(터키 차)를 따라 주었다. 짐은 삐쩍 마른 몸에 행동이 민첩해서 항상 남보다 앞서서 봉사를 했다. 어제도 저녁식사 후, 잽싸게 일어나 금방 부엌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 놓은 것을 보고 놀랐는데 참으로 기특한 젊은이다.
‘ 짐, 너 나의 수양아들하지 않을래?’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었다.
깜짝 놀라는 짐에게 나는,
“ 한국수필가 중에 전시륜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가 쓴 수필이 갑자기 생각났어. 그의 수필에 의하면 그는 미국유학생 시절에 미국 곳곳에 양어머니를 두었대. 어디를 가나 외로운 노인에게 순전히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여 어머니로 삼고, 생일이나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에 따뜻한 인사말을 적은 카드를 보내주거나, 가끔씩 다정한 안부편지를 보내주면 감지덕지한 어머니들은 명절같은 때 가난한 유학생인 그에게 음식도 부쳐주고 때로는 달라지폐를 학비에 보태쓰라, 친구들과 놀러가라고 하며 편지봉투안에 넣어 보내주더래. 그리고 혹시 여행 중에 어머니들 집에 들리면 친 아들이상으로 극진히 대접해주더래. 아들로서 할 도리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정신적인 위로 뿐이래. 나는 외로운 노인은 아니지만 네가 하도 기특해서 아들로 삼고 싶을 뿐이야."
‘한국에 어머니 한분이 계신다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요.’라고 짐이 말했다.
이로서 나는 미국 양아들이 생기게 되었다. 마이클이 자기는 따 돌린다고 서운한 눈치였다.
‘마이클, 너도 내 아들해라. 한국에 오면 한달이고 두달이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줄게’
마이클이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져서, 한국어로 mother를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라고 가르쳐주니 그때부터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억양을 길게 끌어서 엄마아하고 부르는데 꼭 아기송아지가 어미소를 부르는 소리같아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고서복원일을 하고 있는 서바스회원 엘리프를 탁심에서 만나기로 했다.
짐과 마이클은 그랜바자에 쇼핑을 가겠다고 했다. 내가, ‘너희들을 내 아들로 삼은 날을 기념해서 오늘 점심을 사줄테니까 탁심으로 같이 가자. 엘리프와 만나 같이 밥을 먹고 놀다가 쇼핑은 나중에 하면 어떻니?‘라고 하자 두 아이가 다 찬성했다.

써잔의 아파트에 문단속을 단단히 해 놓고 세명이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게으른 미남 마이클이 아들 노릇하느라 무거운 내 여행 백을 사층에서 일층으로 들어내려서 내내 끌고 다녔다. 말라깽이 짐은 터어키어 책을 펼치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노인에게 터키말로 몇 번 버스를 타느냐, 길 반대쪽에서 타느냐. 배차시간이 어떻게 되느냐? 등을 묻는데 애인하고 터키말로 대화하려고 여간 열심이 아니다. 터키어 공부한지 한 달도 채 안되었다는데 제법 일상회화가 통하는 것을 보면 외국어공부도 어떤 강한 동기가 있으면 단시일내에 마스터할 수 있을 것같다. 첫눈에 반했다는 터키여자친구를 언제 만나느냐고 물으니 이번에는 여자친구가 일 때문에 터키 북쪽의 도시에 있어서 못 만나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단다.
1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보스포러스다리를 건너 유럽사이드의 탁심으로 갔다. 이 나라 국부인 아타튀르크의 동상이 서있는 탁심광장에 여러 번 오니 이제 그 근방의 지리를 좀 알 것같았다.

엘리프는 30대의 직장여성이다. 오늘 밤 나를 호스트해줄 외즈게의 사촌형제이다. 중키에 통통한 볼을 가진 쾌활한 현대여성이다. 짐과 마이클도 엘리프와 구면이므로 금방 친구가 되었다. 엘리프가 값싸고 맛이 있다고 소개하는 대중식당으로 갔다. 엘리프가 밥값을 내려고 우겼지만 두 양아들 핑계를 대고 내가 모두 지불했다.
식사 후, 엘리프는 자기 직장인 도서관이 탁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도서관 정원에서 무료로 차를 준다. 모두 같이 가서 차를 마시고 놀다가 나중에 쇼핑을 가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1시에 회의가 있어서 우리가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 있으면 회의가 끝나고 좀 더 이야기하고 놀자고 했다.
광장을 가로 질러 이면도로로 한 15분쯤 걸어가니 아타튀르크도서관이라고 씌어진 건물이 나왔다. 이 나라는 건물이고 지명이고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 너무 많다. 1차대전 후 다 쓰러진 조국을 구하고 과감한 개혁정책을 써서 오늘날의 터키를 만든 이 나라의 국부 아타튀르크는 이미 타계한지 60년이 넘었는데도 이토록 온 국민에게 열렬히 추앙받고 있다.

도서관 정원의 서늘한 그늘에서 두 남자아이들과 이런저런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도 하다가, 낄낄 웃고 장난도 치면서 엘리프가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짐의 말에 의하면 내 이름 ‘김’이 터키 말로 ‘누구’라는 뜻이니 터키에 살려면 이름을 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엘리프가 직원회의가 취소되었다고 좋아서 춤추듯이 걸으면서 정원으로 나왔다. 그녀는 시종일관 웃는 표정에다가 걸핏하면 왼쪽 눈을 찡긋하고 윙크하는데 애교가 철철 넘쳤다. 아는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저 열정과 저 에너지! 참 젊음이 부러웠다. 잠시도 터키어책을 손에 내려 놓지않는 짐이 엘리프에게 터키어 문법에 대해 몇가지 물어보니 너무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잘해 주었다. 나는 엘리프한테 내 이름을 터키어로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더니 왼쪽 눈을 찡긋하고 윙크했다. ‘세비겔’이 좋겠다고 했다. 사랑이란 뜻이란다.
엘리프가 자기 직장동료들한테 우리들을 소개해 주겠다고 고서복원부에 데리고 들어 갔다. 같은 부서의 두 여자직원에게 우리를 소개시켰다. 엘리프가 부장이란다. 큰 테이블에 노랗게 바랜 책과 바스러질 정도로 오래된 종이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위에는 아랍어 같은 문자들이 씌어져 있었다. 옛 유적발굴과 함께 나온 고서등의 파손된 부분을 복원해서 해독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인데 엘리프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상당한 흥미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위해 터어키식 커피를 끓여 왔다. 엘리프가 마이클에게 커피 점을 쳐주었다. 다 마신 커피를 접시에 엎어 놓았다. 엎어 놓은 잔을 세 번 돌리고 잔이 식기를 기다렸다. 이때 만약 잔이 접시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으면 액운이 잔속에 있기 때문에 잔속을 들여다 보면 안된다고 했다. 터키커피는 다 마시고 나면 커피잔에 침전물이 가라앉는데 잔을 엎어 놓으면 컵바닥에 남은 침전물이 흘러내리면서 잔 안쪽에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데 이 무늬로 커피 점을 친다고 한다. 컵안을 들여다보면서 엘리프가 하는 말이, 흰 드레스을 입은 여자가 두명 보인다. 네 주변에는 두명의 여자가 있다.-마이클은 나는 여자친구 한명 뿐인데..이상하다 라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엘리프는 아니다 분명히 두명이 보인다. 현재 여자친구가 한명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또 한사람이 나타나 지금 여자친구와 라이벌이 될 운명이 보인다.. 그리고 너는 내년에 비행기를 타고 동쪽으로 갈 것이다. 이 무늬가 보이지? 비행기 처럼 생겼지? 동쪽에 아는 사람이 있지? 아마 한국에...‘ 마이클은 점이 신통하게 잘 맞는다고 하면서 내쪽을 바라봤다. 내년에 한국의 양엄마를 방문할 운명인가.

점이 끝나고 컴퓨터 인터넷싸이트에서 터키 노래를 감상했다. 내가 아는 터키노래는 단 하나 ‘위스크다르’를 라고 하니, 그것은 아주 옛날 노래라면서 가사를 몰라 끝까지 부르지는 못했지만 엘리프와 두 직원이 함께 불렀다. 노랫말을 물으니 위스크다르에 살고 있는 처녀가 젊은 공무원을 사모하는 연가라고 했다.

엘리프는 이슬람이지만 등록만 한 나이롱신자이고 코란의 내용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다. 토요일 밤에 만난 다른 서바스여성들에게 물어 봤을 때도 모두들 이슬람에 대해 진지하지가 않았다. 서슴치 않고 자신들을 이름 뿐인 이슬람 신자라고 말했다. 남녀평등이 법으로 보장되고 여성에게도 교육기회가 주어지자 가정에만 갖혀 있던 터키여성들이 이제는 고등교육을 받고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사회참여하여 독립된 삶을 추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이상 여성을 얽어매는 이슬람의 구시대가치에 구속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1박 2일동안 같이 지내던 두 젊은이, 짐과 마이클과 나중에 서로 메일을 주고 받으며 앞으로 서로 연락하면서 살기로 약속하고 탁심광장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오늘 밤 호스트를 해주기로 한 외즈게가 갑자기 바쁜 일이 있어서 그녀의 남자친구 투루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다. 시실리역에서 투루와 만나기로 했는데 엘리프는 탁심에서 2정거장 가서 시실리역에서 내리라고 가르쳐 주고도 영 마음이 안 놓이는지 자기도 표를 한 장 사서 나와 같이 역안으로 들어와서 내가 지하철을 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투루는 홍콩상하이 은행의 IT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기 때문에 다른 젊은이들 보다 보수가 많아서인지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꽤 널찍했다. 나는 서바스 소개장 복사본과 한국에서 가져온 민예품을 선물로 내 놓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외즈게가 와서 셋이서 미리 예약해둔 해산물 잘하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외즈게는 175cm의 키에 모델같이 늘씬한 체격을 가진 미인이다.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내리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두사람이 배구교실에서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는데 장래를 약속한 사랑하는 사이란다. 얼굴이 너무 닮아서 처음에는 남매인 줄 알았다.
투루의 이야긴데, 외즈게는 영어를 아주 잘 가르치고, 그녀만의 know-how가 있어서 그녀에게 영어를 배우면 딱 3달만에 영어에 재미와 자신이 붙게 만든다고 했다. 광고를 안해도 소문이 나서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은행에 다니는 자기보다 수입이 더 많다했다. 외즈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만 자연스럽게 영어를 구사할 수 없고, 또 원하는 대학시험에 합격할 수가 없다. 실력있는 선생에게 따로 개인교습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투루가 어렸을 때, 생선 뼈가 목에 걸려 혼이 난 적이 있다면서 생선뼈를 꼼꼼히 발라주었다. 두 사람은 능력있고 보수많은 직장을 가지고 있고 , 아껴주는 이성친구가 있어 이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연인들이었다. 내가 결혼한지 35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렇게 한 남자와 오래 살다보면 어떤 관계가 되나요? 아직도 남편을 연인으로 생각하세요?’라고 외즈게가 물었다.
‘오래오래 같이 살다보니 이제는 남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허물없는 친구같이 느껴진다’라고 말하니 그녀는 투루를 쳐다보며, ‘그런 부부사이가 정말 멋있는 사이지? 우리도 그렇게 오래오래 같이 살아서 그런 사이가 되자.’라고 말했다.
새우요리와, 야채샐러드, 고등어같은 생선구이-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저녁이었다. 외즈게는 식사를 끝내자 곧 바로 과외지도하러 가야 한다고 바쁘게 일어났다.
투루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그 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가 마련해준 침대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은 남편과 스위스호텔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에 오전에 그와 헤어져야 했다. 비록 같이 마주보고 대화한 시간은 적었지만 투루와 외즈게- 두 사람과의 만남도 이번 터키서바스여행의 소중한 추억의 한부분으로 기억되리라.

맺는말
많은 역사적 유산과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대국 터키에서 여유있고 넉넉한 터키인과 보낸 3박4일이 꿈만 같다. 앞으로 기회있으면 터키시골을 여행하며 순박하고 인정많은 시골사람들과 친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여행동안 이 한국 아줌마를 국경과 연령을 초월하여 친구로 받아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 준 이스탄불의 젊은 서바스회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박정희: 내용도 좋지만 글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단숨에 시리즈를 다 읽어 -[07/30-18:03]-

박정희: 내용도 좋지만 글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단숨에 시리즈를 다 읽어내렸습니다 -[07/30-18:04]-

이흥숙: 짧은 일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 얘기... 역시 서바스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08/02-17:38]-

김성례: 국경,민족,문화 아니 나이까지 초월하여 나눌 수 있고 서로 풍요롭게 해주는 서바스국제여행..새삼 그 가치와 귀함을 절감하게 하네요~ 열씨미 성실히 써 올려주신 덕분에 올 여름도 전 여행도 못하고 보냈는데 위로를 받습니다 ^^; 감사하구요 수고하셨습니다 -[08/23-11:17]-

Kim-Chinsu 2014-01-12 17:12	김영숙님, 터키 여행기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엿새 뒤 쯤 터키로 가족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그런지 더 흥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글 내용을 보니 영어도 꽤 하실 것 같은데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