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큐슈 여행 넷째 날

설성룡 2006-09-12 (화) 10:20 조회:1578

큐슈 여행 넷째 날
모든 여행자는 일찍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 오늘의 계획을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상품 여행이 아닌 경우에 말이다. 어둠이 이국의 물상(物象)들을 아침에게 물려주면, 물상들은 형형의 모습으로 우리의 눈앞을 서성대고, 일상의 이곳에서 들을 수 없는 이국의 소리들이 우리의 귀를 두드린다. 그것을 보고, 듣는 즐거움, 이러한 낯섦에의 부딪힘이 우리를 일상에서 떠밀어 내는 이유인가?
아사이나님이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아사이나님의 집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이곳은 주택 밀집 지역인가 보다. 동일한 규격의 한결같은 건물 모양에, 경계만 있고, 담이라고는 없는, 똑같은 색조의 이층 집들이 장기판의 한 칸, 한 칸처럼 웅크리고 있다. 일본인의 집의 특색은 아마 이층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전통 가옥은 이층이 없다. 그러나 요즈음 아파트는 위층이 있을 뿐이다. 동경이나 오오사카를 여행해 보신 분들이면, 도시 곳곳에서 아침마다 울려 퍼지는 까마귀 울음 소리의 섬뜩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까마귀가 없었다. 담을 대신해서 심어 놓은 나무와 화초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면서 아사이나님의 집 부근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고, 집으로 들어오니, 아사이나님이 오늘 계획을 알려 준다. 오늘은 미야자키 서바스 회원들 중에서, 하라다님과 구로키님의 아내(쇼코)와 따님(마이.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기숙사 룸메이트가 서울대학 출신이라 함)이 우리와 함께 지역 관광을 한다고 한다. 아침 식사가 스페샬이라고 하는데 토스트에 잼, 양상치와 몇 가지 야채, 수퍼백 종류와 일본식 국이었다. 빌어먹을 스페샬, 코쟁이 음식이 스페샬이면, 한식은 울트라 슈퍼 스페샤루이다.
10경 미야자키 서바스 회원인 하라다상과 쇼코 및 마이가 아사이나님의 집으로 왔다. 대문 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쇼코님의 차에 아사이나님이 타고 우리는 하라다상의 차를 탔다. 아야성으로 간단다. 타카치호 협곡을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갈 수 없다. 자유 여행이었다면 기를 써서 갔을 것이다. 아소 화산의 용암이 흘러내려 만든 20km 길이의 협곡중에 가장 경치가 빼어난 곳이 타카치호 협곡이다. 폭포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무지개 빛 물줄기를 바라보며 환상적인 경치에서 보트를 즐길 수 있단다. 안성기와 이미연 주연, 배창호 감독의 추리 영화 '흑수선'이 촬영된 곳이다. 어쩔거나, 난고손이라는 백제 마을도 갈 수 없다. 이것이 서바스 여행의 단점이다. 내 뜻대로가 아닌 네 뜻대로!
아야성 주차장 옆에 구름다리가 있었다.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이어 놓고, 그 밑의 울창한 수림을 보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야성과 국제크래프트관은 입장료는 350엔이었다. 내가 낼려고 하니, 아사이나상 단호히 각자가 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들어가는 곳 왼쪽에 <아야소학교 기념관>이 있다. 메이지21년(1889년?)에 지어진 학교를 당시 모습 그대로 이전시켜 영원 보존시켰다고 한다. 교실 안에는 당시 사람들이 사용했던 농기구며 생활 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농경 사회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었다. 염색관에서는 염색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으나, 염색된 천과 그 천으로 만든 공예품과 옷들을 구경하고, 공예관에 들러 여러 가지 공예품들을 구경하였다. 무엇이든지 모아서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의 전시 능력. 그런데 비가 왔다 갔다 하는구나. 아야성 천수각으로 비를 맞으며 들어가니 아사이나상이 이 성은 전투용 성이란다. 요렿게 전투 연습을 해서 임진란을 일으켰나. 장군들의 회의하는 모형을 보면서 슬며시 심사가 틀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하라다상은 과묵하신 분처럼 느껴졌다. 아내는 쇼코의 차를 탔으면 이야기라도 많이 나누었을텐데 하는 심사였고 나는 말을 모르니 이 차나 저 차나 마찬가지. 주차장을 내려와서 뒤의 차와 길이 엇갈려 버렸다. 하라다상이 잠깐 기다리다가 어디론가 쏜살같이 차를 몰고 간다. 슈센노모리 (酒泉の杜)였다. 미야자키의 대표적인 테마공원이다. 미야자키의 운카이(雲海)주조회사와 아야쵸농협 등 민간과 행정기관이 공동으로 건립한 술테마파크로 연간 2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미야자키의 명소이다. 미야자키 각 지역의 고유한 맥주를 비롯해 와인, 소주, 청주 등 갖가지 종류의 술을 제조, 판매하고 무한정 무료시음도 할 수 있다. 와인관에서는 총 11종의 와인중 6종류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고, 소주관에서는 거의 대부분, 맥주관에서는 4종류의 맥주를 모두 시음할 수 있다. 연간 판매액이 약 3억 5천만엔에 이른다고 한다. 온천장도 구비되어 있었다. 아내는 와인관에서도 홀짝, 소주관에서도 홀짝, 얼굴이 붉지 않느냐고 나에게 물어 온다. 유리 공예관도 있었는데 유리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놓고 판매를 하는데 가격이 엄청났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미야자키의 대표 음식인 치킨 남만은 어제 에이프론에서 먹었고, 히야시루(차가운 국)를 먹자고 한다. 히야시루는 미야자키의 대표적인 향토요리다. 구운 된장에, 생선, 두부, 오이, 차조 등을 섞은 것이다. 금방 한 밥과 함께 먹는다. 음식값이 만만챦다. 당연히(?) 아니 당당하게 한국인의 예의를 이곳에 드날렸다. 점심을 먹고 나와서 쇼코님과는 헤어졌다. 저녁에 다시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녀들과 아내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으나, 이제 하라다상과 아사이나님과 함께 우리는 평화의 공원으로 갔다. 하라다상은 계속 남자 특유의 무게를 잡고 계셨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세워진 '평화의 탑'이 있는 공원. 탑의 초석은 세계 각국에서 기증받은 돌이라고. 무인, 농인, 공인, 어부를 상징하는 4개의 상이 사방을 두르고 있는 높이 37m의 탑. 신기하게도 탑 앞에서 박수를 치면 탑에서 소리가 울린다. 실제 탑 앞에서 박수를 치니 메아리가 되돌아 온다. ‘팔굉일우’라고 쓰여진, 거대한 조형물은 평화를, 그것도 일본에 의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를 알까? 공원 옆에서 하니와 공원이 또 있었다. 이곳의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았던 토우다. 기묘한 모양 중에서도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한 하니와 옆에서 기념 촬영. 아사이나상은 마냥 즐겁게 우리를 안내한다. 하라다상은 멀찍이서 무게만 잡는다. 3시 경 쯤 아사이나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은 슈퍼로 장을 보러 가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해서, 간다고 했지만, 이층 침대에 누우니 피로가 몰려와 한숨 자기로 했다.
저녁 6시 반경에 기하라상이 왔다. 소곤소곤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매우 다감하신 분이었다. 무역업을 하시는데 부산에 자주 왔고, 더욱이, 전철에서 일본인을 구하고 죽은 이수현씨의 장례에 참가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오늘 저녁에는 나카자키님의 집에서 미야자키 회원들의 환영 파티가 있고, 우리는 나카자키님의 집에서 일박을 할 것이다. 미야자키의 어둠 속으로 구불구불 길을 돌아서 돌아서 나카자키님의 집으로 간다. 짐을 꾸려 들고, 선물을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걱정을 하면서, 아! 컵라면이 5개 남아 있으니 그것을 내어 놓고 나카자키님에게는 김과 인삼 캔디 및 비빔면을 드려야지...
나카자키님 집에 도착하니 여러 회원들이 속속 들어온다. 나카자키님은 온후하신 분같이 느껴졌다. 사모님도 단정하시다. 거실에 의자를 붙여서 사람들이 앉고, 자신이 만들어 온 음식들을 한 곳에 진열한다. 정리가 되었나 보다. 나카자키님이 오늘 미야자키 회원들의 모임을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뷔페식으로 차려진 식탁으로 몰려들어 음식을 들어서 온다. 배가 고팠던지라 한 접시를 들고 올까 하다 체면 치레로 조금만 들고 온다. 만들어 온 갖가지 음식들이 다 먹고 싶었지만 이 놈 체면..... 참석한 회원은 10여명, 나카자키님의 개회 인사가 다음에 각자 자기 소개를 한다. 여기서도 서로 개인적인 접촉은 잘 없나 보다. 공식적인 모임에서 이렇게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은 우리와 같구나. 아내와 나도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서바스 호스트를 한 경험 등을 이야기 하며 좌중은 이야기 바다에 빠진다. 박수, 박수..... 자기들끼리 당면 문제를 논의하는데 아마 11월 경에 한국 서바스 회원들을 초청하는 일인 것 같다. 각자의 집에 몇 명이나 받을 수 있는가를 돌아가면서 이야기 한다. 서로 머뭇거린다. 나는 이런 일이 있어, 나도 저런 일이 있어, 에--에 우리 집은 두 명을 재울 수 있습니다. 격렬한(?) 논의 끝에 회의가 끝나 간다. 내 옆에 기하라씨가 소곤소곤히 나에게 말을 걸어 오며 명함을 준다. 처음 보았을 때 이야기를 또 한다. 무역업을 하면서 부산에 자주 간다. 이수현씨 장례에 참가했다. 무엇을 하느냐. 간단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였다. 수염을 기른 얼굴이 친근하다.
음식이 많이 남았고, 우리가 가져온 컵라면도 남았다. 아사이나상이 잠껭뽕 놀이를 하잔다. 구로키상의 딸 마이만 이십대고 모두 연배가 있는데도 짬겡뽕을 함께 외치면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한다. 일등을 한 사람에게 아사이나상이 선물을 준다. 일행의 숫자보다 적은 컵라면의 배분도 잠껭뽕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단순함이 명쾌한 해결을 담보한다는 경험칙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끝나가는 파티에 진기한 일이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식탁 위에는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안주인이 남은 음식 접시를 회원들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가. 회원들은 남은 음식을 식욕 껏 담아 처리를 한다. 접시들이 깨끗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남은 음식은 은박지로 안주인 포장을 깔끔히 하여 그 음식을 가지고 온 본인들에게 선물(?)로 준다. 삽시간에 음식 탁자 위의 그릇들이 해결되었다. 이런 이런 기특한 방법이 있었구나. 파티에 자신만의 특기 음식을 만들어 갈 줄만 아는, 남은 음식을 주인 집에 버려 놓고 가는 우리와 대조가 되는, 생활의 지혜를 경험하는 뭉클한 순간이었다.
9시 반경 회원들이 떠나간다. 아사이나님도 간다. 자알 가라. - 어조를 생각해 주기 바람. 나카자키 부부와 거실에서 조용히 환담하였다. 내일 가고시마로 가는데 아침에 미나미미야자키역으로 데려다 주면 좋겠다. 좋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카자키님의 부인 세츠코님이 자신들이 미국에 체류할 때 한국인들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 처음에 사귀기가 몹시 어려웠다라는 말을 한다. 현재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일본의 과거의 잘못들을 들추어내어 자신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한글에 대해 아야기가 나와 나의 전공(국어교사)을 살려 한글의 우수성을 한껏 자랑을 하며, 현 일본 문자 생활에서 한자 추방이라는 문자 혁명을 일본도 감행해야 함을 역설했다.
집안은 고요했고 나카자키님이 걱정을 한다. 가고시마에는 호스트가 없어 미안하다. 우리는 여관을 잡아서 이틀을 보낼 것이라 했다. 자신이 인터넷 검색을 해 준다고 한다. 우리가 잠시 쉬는 동안 나카자키님이 검색을 하여 싼 가격의 세미더블 비즈니스 호텔을 추천해 준다. 고맙다. (이 일본 숙박 검색 사이트는 가격대별로, 방 규모 별로, 등급 별로 모든 조건을 넣으면 조건에 맞는 일본 각 지역의 여관이나 호텔을 알 수 있음. 매우 유용한 사이트여서 여행 팁란에 올려 놓았음.) 다음날 우리는 가고시마 역 앞의 인터넷 카페에서 이 호텔에 예약을 하였다.
이 집은 아사이나님의 집과는 달리 매우 단촐하게 내부를 정돈해 놓았다. 아내는 아사이나님의 집 내부(정신이 없을 정도로 별별 것들을 벽에 달고 진열해 놓았음.)가 모든 일본인 가정의 보편적인 내부 꾸밈인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단순하게 집을 꾸민 안주인에게 감탄한다고 말한다. 안주인은 자신은 심플한 것이 좋단다. 아내도 심플한 것을 좋아 한다. 심플이다. 한 쪽켠 다다미 방에 심플한 잠자리를 준비해 두었다. 화장실 문에 심플하게 조그만 종이로 화장실 표식을 해 두었다. 이 조그마한 배려, 섬세함, 역시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
내일은 가고시마, 우리만의 자유 여행이다. 서바스 회원들의 도움도 좋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받는 여행보다, 일정 중에, 자신만의 힘으로 여행을 하는 시간도 필요함을 여행 뒤에 알았다.
미야자키여! 미야자키여! 미야자키 회원들이여! 언제든지 우리 집을 방문하시라! 내 힘껏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