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베트남의 까페 쓰다(5)

김새로미 2006-08-24 (목) 00:40 조회:1821

8월3일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컵라면을 먹고 메콩 투어를 떠난다. 캄보디아의 똔레삽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베트남에 이르러 비옥한 메콩 삼각주를 만들었다. 똔레삽 호수에서 본 물위에서의 삶이 베트남에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버스에는 이태리, 호주, 미국, 일본, 한국, 보트피플로 캐나다에서 살다가 고국으로 여행 온 베트남계 캐나다인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가이드는 능숙한 영어로 이런 저런 설명을 해준다. 자다가 깨다가 하면서 설명을 들었는데 요즘 오토바이가 굉장히 많이 늘었으며, 일본산이 가장 비싸고 그 다음이 한국산, 그리고 중국산이라는 이야기가 귀에 딱 거린다. 언제 일본산을 제쳐 보려나.

메콩강에 도착하여 작은 배를 탄다. 황토빛 물이 넘실대는 메콩강을 배를 타고 건너 드래곤, 터틀, 유니콘 등등의 이름을 가진 섬들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유니콘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처음으로 간 곳은 코코넛 캔디를 만드는 곳과 뱀술가게였다. 뱀술은, 보기만 해도 심장이 갑갑했다. 과실주 담그는 붉은 뚜껑의 큰 유리병 안에 색색의 뱀이 한 스무마리 정도 꽉 담겨있었다. 술보다 뱀이 더 많이 보인다. 가이드가 한잔씩 따라주는 뱀술을, 입술을 대어 조금 맛보았다. 진짜 독했다. 그걸 원샷 하는 친구가 대단해보았다. 조금 있다가는 나도 다 마실 걸 생각했지만..^^

다음에 들린 곳은 벌꿀과 로얄 젤리를 파는 곳이었는데 꿀이 가득 든 벌집을 꺼내 벌들을 옆으로 약간 치운 다음 손가락으로 눌러 맛을 보게 해주었는데 장사를 위한 것이겠지만 무척 신기했다.
옆에서는 어른 목둘레만한 2미터 정도의 뱀을 목에 감아보게 해 주었는데 어깨에 감아보니 뱀의 뼈 관절이 피부를 통해 다 느껴지고 낼름거리는 혓바닥이 팔에 닿는 것이 으스스했다. 뱀이 인간에게 너무 혹사당하는 것 같아 불쌍했지만 뱀을 감아본 그 순간은 또 못 잊을 추억이 되었다.
가이드가 테이블에 둘러앉으라고 하더니 꿀차를 한잔씩 준다. 꿀차를 마시면서 일본 청년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한국에 공부를 하러 올꺼란다.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꿀이 한 병에 이천원이었다. 평소에 벌꿀을 좋아해서 한병을 샀다. 메콩강 투어의 유일한 기념이 되었다.

또 자리를 옮겨 베트남 전통 노래 공연을 보면서 과일을 먹은 후, 조각배를 타고 밀림을 지나갔다. 그래도 메콩강 유역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나짱 지역에서 본 산들은 형편없었다. 베트남전 당시 고엽재로 인해 식물들이 말라죽어 조림사업을 한지 30년이 되었다는데도 아직도 산들은 황폐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고엽제로 신음하는 참전용사들과 황폐한 베트남의 산하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조각배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탔다. 다른 섬에 점심을 먹으려 내렸더니 흙탕물 속에 물소가 누워있다. 자기도 더우니 꼼짝하기 싫은 게지. 우리가 다가가니 흘깃흘깃 우리를 바라본다. 눈동자가 순박해보였다.

점심식사는 좀 부실했다. 사실 7달러 내고 그 장거리 버스비에 점심에 배를 탄 것만 해도 몇 번인지. 어짜피 우리가 산 소소한 물건들에서 커미션을 받겠지만, 우리가 먹은 과일, 꿀차. 뱀술, 코코넛 캔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엘레펀트 피쉬라는 물고기 요리를 주문해먹으라는데 그냥 주는 점심만 먹었다. 식사가 끝나니 자전거를 빌려주면서 두 시간 정도 섬을 돌아다니며 놀다 오란다. 친구가 자전거를 못타 슬슬 걸어다니기로 했다.

골목을 걷다가 그 섬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조랑말 버스(?)를 탔다. 조랑말 소녀가 뜬금 없는 곳에 우리를 내려준다. 얼마를 주면 되냐니 그냥 주고 싶은 대로 달라고 한다. 잔돈이 없어 5000동(3000 조금 넘는 돈)을 주었더니 거의 로또 맞은 표정으로 신나서 조랑말을 몰고 간다. 지각없는 여행객들이 돈을 가치 있게 쓰지 못하고 쓸데없이 많이 써서 다음에 오는 여행객을 곤란하게 하고 베트남 경제를 유린한다는 말을 아이스크림집 아저씨로부터 들은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듯한데 뒷맛이 씁쓸했다. 그래도 그 조랑말 소녀는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을테지. 어쨌든 조랑말 소녀가 내려준 곳은 관광객들이 오는 식당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빠져나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날씬한 닭들과, 수로에 숨어있는 망둥어들, 나비들, 시골의 이발소, 먼지 앉은 상품들이 놓여있는 작은 시골 가게, 미싱 한대가 놓여있는 양장점들을 지나자니 또다시 스콜이 온다. 비가 뚝뚝 떨어지는데, 베트남 모자 ‘농’은 굵은 빗방울도 잘 막아주었다. 비가 아무래도 많이 온다 싶어 길가에 있는 까페로 들어갔더니 맞은편 여염집에 모여앉아 있던 동네 총각들이 뭐가 좋은지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보낸다. 또다시 ‘까페 쓰다’를 주문했다. 스콜은 까페의 함석지붕을 세차게 두드리며 무섭게 내린다. ‘까페 쓰다’는 여전히 달았다. 연유가 가득 든 베트남 커피의 진한 맛과 달구어진 길을 식혀주던 스콜의 빗줄기,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유심히 지켜 보며 손을 흔들던 베트남 총각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배를 타고 강 어귀의 포구로 돌아왔는데 버스는 5시에 온단다. 지금이 3시인데, 저 뒤쪽으로 가면 시장이 있으니 거기 가서 놀다 오란다. 날씨는 덥고, 목은 마르다.
일본 총각들은 영어를 잘 못하니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계속 물어본다. 5시에 버스가 오니 저쪽 시장에 가서 구경하고 있으랬다고 하니 지쳤다면서 노천 까페에 앉아 카드를 꺼내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
우리 넷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란 생각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또 시장 쪽으로 걸었다. 그런데 시장은 안 나타나고 영어는 안통한다. 노천 식당의 길거리 테이블에서 병아리가 되다만 삶은 계란을 조그만 스푼으로 먹고 있는 아가씨들에게 말을 걸었더니 뭐가 좋은지 우스워 죽는다. 나도 영어로 ‘시장이 어디에요?’ 묻다가 포기하고 한국어로 ‘그 계란 맛있어요? 좀 보여줘봐요.’하고 통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가씨들은 재미있어 난리고 나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용기가 있었으면 그 병아리 직전의 계란을 먹었을 테지만 오늘 뱀술까지 먹은 터라 아무래도 그 계란은 무리다 싶어 참았다. 둘 다 먹었으면 몬도가네 여행이 되었을뻔 했다.
아가씨들을 뒤로 하고 다시 항구 쪽으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는데 사탕수수즙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하나를 사서 빨고 있자니 안먹겠다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씩 사서 먹는다. 사실 노점 음식이 조금 겁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음식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반미’라는 베트남 바게트도 노점 할머니에게 150원 주고 하나 사서 뜯어먹었다. 금방 구운 방이 고소했다.

버스가 온다는 항구의 벤치에 앉아있는데 자질구레한 장난감 행상을 하던 베트남 소녀들 둘이 오더니 내 ‘농’을 달란다. 줄까 잠시 고민하다가 베트남에 와서 산 유일한 물건이라 미안한데 내 꺼야.. 웃으면서 보낸다. 좀 미안했다. 일본 아이들은 말도 안 통하는 캐나다 소년과 열심히 포커 중이고 우리는 벤치에 앉아 메콩강을 바라보았다. 5시가 안되어 버스가 왔다. 13불 내고 더 먼 곳까지 갔다 온 버스에 7불을 낸 우리를 태우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 냈으니 그 사람들의 두 시간 만큼을 기다려주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항구를 떠나다 보니 아까 계란 먹던 아가씨들과 만났던 자리에서 두 블럭 떨어진 곳에 가이드가 말한 시장이 있었다. 시장은 못 보았지만 우리는 그 대신 이 아가씨들을 만나고 사탕 수수즙을 마시고 메콩강을 바라보았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하고자 했던 그 어떤 것을 못하더라도 또 다른 것이 새로움을 주는 것. 그래서 항상 여행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주는 것 같다. 절대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스콜과 교통체증으로 버스는 8시에 호치민에 도착했다. 여자들은 현지식당에서 뭔가 더 하고 싶었지만 남자들은 공항에서 기다리기를 원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여행의 끝은 항상 아쉽다.

저녁의 탄손낫 국제공항에는 헤어짐이 슬퍼 큰 소리로 울고 있는 가족들이 항상 있었다. 탄손낫 공항에 올때마다(네번) 어김없었다. 자세히 뜯어보니 외국에 시집가는 딸들을 보내는 가족들이었다. 한국 거리 곳곳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생각난다. “도망 안가는 베트남 처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그 아가씨들은 이런 이별을 뒤로 하고 살아보겠다고 이역만리 물 설고 땅 설은 곳으로 오는 것이다. 예전에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겠지. 파독 광부, 간호사들, 참전 용사들, 중동 근로자들. 베트남에 오니 우리 현대사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감상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티켓팅을 한 뒤 마지막 쌀국수를 먹고 마지막 ‘까페 쓰다’를 마셨다. 공항의 쌀국수는 여전히 훌륭했고 커피도 진하고 부드러웠다. 같은 여정이었어도 사람들은 모두 베트남에 대해 다른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베트남은, 나에게는 왠지 굴곡 많은 우리 현대사와 겹쳐 미안하면서도 앞으로는 더 잘 알고 더 좋아하고 싶은 나라로 기억될 것 같다. 베트남의 ‘까페 쓰다’, 이름만 들으면 쓰기만 할 것 같은 베트남의 냉커피 ‘까페 쓰다’가 달콤하고 진하기만 하였던 것처럼 짧았지만 좋은 여행이었다.

허순: 베트남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이전에 하노이만 갔다와서, 호치민을 계획하고있는데왓는 데 -[08/24-22:03]-
=허순" target='hxg' onClick="fork('mail_form')" title='shur@orgio.net'>허순: 호치민 여행시 참 도움이 많이 될것같습니다. -[08/24-22:16]-

홍은미: 재미있는 여행기네요. 이번 겨울에 베트남에 갈 예정이라 자세하게 읽었습니다.헤헤~ 짧은 여행이라 많이 아쉬웠겠어요! -[12/18-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