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 도예원]을 찾아서

생전에 벼슬이 없었던 사람의 신위(神位)를 ‘학생(學生)’이라 일컫는다.

여기서의 ‘학생’이란 단순한 일반적 개념이 아니라, 유가(儒家)풍속에서 전래된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채 평생을 ‘배우다 간다’란 의미를 내포한 신분적 명칭이다.

그렇다. 우리는 평생을 배우다 가는 것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겠다고 호언하던 사람도 죽음을 눈앞에 둔 [삶의 완성(完成)]이란 명제(命題)하에서는 자유롭지 못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학생’일 따름이다.

십일월의 첫 주 토요일. 이 날은 ‘학생의 날’이다. 아마도 수능시험을 대비해서 심신이 지친 수험생들의 노고와 고뇌를 하루나마 치하 해 주고 격려하고자 한 날이리라. 유치하고도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학부형이 아니어서 일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갑답게 살려면 어차피 한평생을 ‘학생’으로서 살아야 할 터. 세상의 직업군(職業羣)이 제마다 ‘날’을 정한다면 삼백 예순 일도 모자라지 않겠는가.

[전두환]이 그의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하기 위한 술책으로 프로야구를 탄생시킨 것이나,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로 도입했던 것과 같이 정치인들의 술수는 철저하게 아페이론(Apeiron)을 외면해 버린다. 만물이 생겨나고 돌아가는 근원 및 원리의 배제. 그것은 횡포다. 그런 횡포를 올림포스 신에게서 절대조건을 이양 받았던 ‘티탄’들처럼 마냥 기다리며 견딜 수 없기에 우리는 ‘서바스’의 멤버가 되어 디오니소스적 축제를 찾아 먼 길을 떠나곤 하는 것이다.

가을은 깊어져 길거리엔 단풍으로 피어 보지도 못한 낙엽들까지 추한 몰골로 이리 저리 뒹군다. 마침 김해의 [가락 도예원]에서 장작 가마에 불을 지핀다는 전갈이 왔기에 오래 만에 ‘불구경’을 나설 요량이었는데, 느닷없이 ‘창원에 들러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이(흥숙)지부장의 제의가 왔다. 김(종수) 회장께서도 오신단다. 창원에서 계획 없던 ‘번개 팅’이 이루어졌다. 바쁜 업무를 미뤄 놓고 참석하신 ‘이 총무’님, 느닷없는 손님맞이에 수업시간을 넘겨야 할 ‘구(춘옥)’원장님 내외, 미리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시던 ‘성(재위)’ 회원님. 우리는 인근의 요리 집에서 주인의 호의(好意)까지 곁들여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락 도예원’으로 향했다.

[가락 도예원].

집이 앉은 위치부터서 예사롭지 않다. 보통의 주택들이 배산임수(背山臨水)라지만 가락도예원은 그 앉음새부터가 반대 방향이다. 속세를 등지고 싶은 주인의 의지리라. 그렇게 숨어 살기도 모자라 묻혀 살고 싶은 도공(陶工). ‘백산(白山) 지명보’선생님. 산청이 고향인 선생께서는 확연히 사슴의 눈을 지닌 순수의 대명사다. 사람의 마음을 온통 도둑질 해 버리는. 선생께선 흔히 보는 ‘도자기공’이 아니다. 살아 있는 ‘인격’. 직관의 소유자. 말하자면 직관의 삶을 사는 ‘도인’이다. 직관의 삶이란 지성과 감성, 지(知)와 사랑이 하나 된 제3의 행태(行態)가 아닌가. 그런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삶이 아니다. 나날의 곰삭힘 속에서 자신의 ‘에고’를 다 덜어내었을 때, 그때라야 비로소 형성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재된 지성은 ‘반야(般若)’요, 감성은 곧 ‘자비(慈悲)’가 된다.

불을 지필 때는 ‘직화(直火)’를 피한단다. 에둘러 가면서 ‘머뭇거릴’줄 아는 여유를 말함이다. 성급함을 빼 버린. 그렇게 함으로서 전체를 고루 익게 한단다. '본불'이 꺼지고 나면 ‘봉창’을 통 해 ‘칸 불’을 피운다. 그 때마다 피어나는 불의 조화로서 도자기는 또 다른 몸으로 환생(還生)하는 것이다. 근동(近洞)의 인사들은 물론 부름을 받지 않은 객까지 합세되어 분위기는 제법 어우러졌다.

경기 민요 가락을 뽑아내는 간드러진 전수자들의 목소리. 그 소리에 보태 오랜 동안 소식 몰라 하던 ‘김(대철)’선생의 [동래학춤]을 구경하였다. 오랫만에 만나게 된 지인에 대한 답례라는 인사까지 더불어서.

“사람 한평생 사연도 많고~, 에헤~ 헤어지면 천년이요 손잡으면 만년이라~~.” 경기 민요의 가사(歌詞)내용이다.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줌일까. 명창들의 흥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북과 징. 장구 가락에 맞춘 소리꾼들의 ‘시김새’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추임새’를 불러 일으켰다. 하나로 어우러진 합창. 누가 시킨 게 아니다. 그냥 그대로 터져 나온 ‘흥’의 덩어리. 급기야 허리띠를 풀어 즉석에서 ‘노 젓기’를 연출하시는 회장님의 재치. 아마도 그런 재치로 한국의 ‘서바스’를 이끌어 가시는가보다.

한바탕 놀음의 흥이 식고 자정을 넘긴 시간, 굴뚝의 곁불을 보러 갔던 우리 일행은 가마 안의 도자기가 몸을 달구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주저함이 없는 불. 온화한 느낌. 그러나 따스함만은 아니다. 정념이랄까. 말문이 막혀버린 내게 회장님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린다.

“엑스터시!” 

맞다. 황홀경! 그것은 불로 보였을 뿐 분명 불 너머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초월적 대상. 아! 불꽃이여. 그 불꽃에는 ‘신(神)’이 깃들어 있었다. 신(神)은 물질의 핵(核)이 아닌가. 숭고와 열관(悅觀). 이것들이 감수성으로 발현되면 괴기(怪奇)해 진다. 어찌 가슴 저리는 아름다움을 ‘미학(美學)’에서만 추구하리오. 사물에도 의지가 있다하여 그것에 의해 마음을 바로 잡으라는 양명학이나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그 원리를 밝히라는 주자학의 사상도 모두 ‘격물(格物)’의 ‘치지(致知)’에 있지 않은가. 무릇 지식이란 ‘격물치지(格物致知)’가 바탕이란 말이다. 대중문화에서의 ‘아우라’. 이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지식이며 미학의 혁명이다.

밤이 늦었다. 그러나 밤만 늦었지 덩달아 우리까지 늦은 건 아니었다. 새벽 3시를 넘긴 시간까지 ‘해운대 에레지’와 ‘봄날은 간다’는 그칠 줄을 모른다. 겨우 추스린 밤이 새고 일요일 밤까지 이어진 우리들만의 축제. 이젠 그 축제의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뱀장어 찜 보신과 가마를 헐기 전에 두터운 장갑을 끼고 열기 가시지 않은 작품까지 챙겨 주시는 선생님의 정(情) 이어가기. 보따리 보따리 챙겨 든 발 걸음 마다 행복은 행복대로 보따리로 넘쳤다.

터질것같은 행복감. 이것은 정녕 대한민국의 복(福)일지로다.

그날 밤을 같이 했던 여러분들의 건녕을 묻(問)는다.

*이 지부장님 사진 첨부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