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베트남의 까페 쓰다(2)

김새로미 2006-08-24 (목) 00:29 조회:1337

7월30일
오늘은 아침 6시 30분 베트남 항공으로 Na Trang으로 간다. 월남전 당시 맹호부대가 이곳을 통해 상륙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나트랑’으로 많이들 알고 있지만 현지 발음은 ‘나짱’이었다.

티켓팅을 하고 기다리면서 공항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쌀국수를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베트남에서는 어디서 먹어도 쌀국수 맛이 보통 이상이었다. 그 맛을 잊을수 없어 한국에 돌아온 뒤 쌀국수를 먹으러 갔었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사실 월남쌈은 우리나라 것이 훨씬 맛있었는데, 쌀국수는 그렇질 못했다. 지금도 쌀국수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여행할 때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오성급 리조트를 예약했다. 오늘은 기사딸린 차량도 예약해두었다. 처음 여행 시작할 때는 하룻밤에 900원 짜리(태국에서 30밧 짜리 방에서 잔 일이 있다)에서도 잠만 잘 잤었는데 점점 급이 올라간다. 너무 고급이 아닌가 죄책감도 들었다. 그렇지만 전처럼 배낭 지고 다니기엔 매일같이 밤 12시에 퇴근하는 신랑을 쉬지도 못하게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같이 여행간 친구들은 해외여행이 처음이라 너무 힘들게 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싶어 이번에는 쉽게 쉽게 다니자고 생각했다. 막상 도착해보니 나짱 교통이 왠만하면 택시를 이용해야 했고 택시비도 호치민보다 비싸 더운 날씨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9인승 벤츠가 나와 있었다.(오전 8시에서 오후 2시까지 이용료 50불로 예약했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홍콩 아주머니 왈, 너네 바가지 썼구나~ 우리 가족 27명이 이번에 다같이 여행 왔는데 우린 40인승 버스 하루 종일 70불로 예약했단다..친구들에겐 말 안했지만 가슴이 쓰렸다.) 날씨가 엄청 더웠는데 에어컨 빵빵한 벤츠에 기사분 안내 받으며 여행을 다니니 좋긴 좋았다. 뜬금없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우선 롱썬사로 갔다. 거대한 와불과 좌불이 있는 절이었는데 동남아 다른 곳과 비교하면 부처님이 태국이나 캄보디아 보다 아주 약간 통통하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위쪽으로 올라올수록 불상의 모습도 조금씩 변하는구나 싶었다.
롱썬사에서 옛날 참왕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뽀나갈 탑으로 이동하였다. 나짱의 대표적인 유적지이긴 하지만 재작년에 갔던 캄보디아 앙코르왓의 거대 유적지군의 인상이 굉장히 강해 비슷한 형태의 뽀나갈탑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탑의 형태는 보면 앙코르 초기 시절에 지어진 탑의 형태와 비슷했다. 역시 같은 문화권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도 앙코르왓의 압사라 무희와 유사한 조각이 탑에 새겨져 있었다. 상반신은 드러내고 비치는 치마를 입은 무희는 방울을 쥐고 있었다. 아랫배가 살짝 나온 통통한 모습이 마음에 든다. 여기 무희도 역시 앙코르 무희보다 약간 살이 올라 있구나 싶었다.
친구 부부의 취미가 사진 찍기라 굉장히 비싼 카메라로 신혼여행 온 척 여러 가지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놀러온 베트남 사람들도 구경하면서 유적지에서 땀을 식혔다. 언덕에 있는 뽀나갈 탑에서 내려다본 삼각주의 야자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아침에 강행군을 한 지라 피로도 풀 겸 이 지역의 유명한 온천인 탑바온천으로 향했다.
4명 단체 티켓을 끊었는데 4만5천동, 우리 돈으로 삼만원이다. 여기 물가를 생각하면 굉장한 고가임에도 현지인들이 굉장히 많았다. 유럽인들, 일본인들도 눈에 띄었다. 티켓에는 4명이 개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머드탕과 온천탕이 포함되어 있고 광천수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귀중품을 맡기고 수영복 입고 노천샤워를 한 뒤 머드탕에 일단 들어갔다. 머드탕에 네 명이 오글오글 모여앉아 수다 떠는 맛도 제법이었다. 30분정도 머드탕을 하고 나면 4인용 온천탕을 따로 내어 주는데 여기서는 한 10분 밖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날씨도 더운데 뜨거운 탕에 앉아 있자니 머리까지 어지럽고 마실 물도 준비를 못해서 물이 많은데도 목이 말랐다. 그림의 떡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우리를 위해서 4인용 탕에 새로 물을 채워주어 금방 나오려니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안되겠다 싶어 시원한 물을 찾아 광천수 수영장을 갔지만 아뿔사 여기도 뜨거웠다. 흑흑.. 이 사람들은 이 더운 날싸에 어떻게 이 뜨거운 물에서 재미있게 지내나 싶었는데 그래, 여긴 온천이지, 어쨌든 피부는 좋아진 듯 하고 피로도 풀렸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샤워실이 따로 없어서 비누로 씻지를 못했다. 샤워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다들 노천샤워를 가리키는데 비누를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남녀가 같이 사용하고 있어 그야말로 대강 헹구는 정도밖에 안된다. 샤워장이 정말 없는 것 인지 못 찾은 것인지 아직까지 미스테리다. 당췌 말이 안 통하니 알 수가 없지. 머드탕에서의 경험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온천을 나와 담시장으로 향했다. 시간이 어중간해서인지 꽤 규모가 큰 로컬마켓인데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군것질 거리로 조미오징어와 말린 과일, 람부탄을 좀 샀다. 한국 과자가 인기가 있는 모양인지 프링글스와 초코파이가 같이 진열되어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점심시간이 넘어 가고 있어서 얼른 베트남 모자 ‘농’을 하나씩 사 쓰고 다시 차에 올랐다. ‘농’은 가볍고 시원한데다 가격까지 싸서(개당 800원) 마음에 쏙 들었다. 차에 올라 ‘락깐’이라는 유명한 숯불구이 집을 찾아갔다. 론리 플래닛에도 소개가 되어 있었고 많은 여행자들이 추천한 집이라 찾아갔는데 조그마한 화덕에 생새우와 야채, 쇠고기 등을 주면 각자 알아서 구워먹는 식당이었다.
쇠고기는 물소고기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나 질기던지 다들 먹느라 고생했다. 그래도 온천에서 힘들었는데 시원한 맥주와 숯불구이 새우를 먹으니 없던 입맛도 살아나는 것 같았다. 여행 가면 고생이니 살이 빠지겠지 라는 생각을 항상 하지만 여행만 오면 살이 부득부득 더 찐다.
식당에 들어갈 때 쏟아졌던 스콜이 나올 때는 싹 그쳐있다. 지금은 우기이지만 비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더위가 싹 씻겨 내려가는 듯 했다. 리조트로 가면서 ‘마마한’이라는 여행사에 내일의 보트투어를 인당 6불을 주고 신청했다. 리조트로 들어가는 호텔 로비에서 기사님께 약간의 팁을 드리고 인사를 했다.

예약한 곳은 한 섬 전체가 리조트인 소피텔 빈펄리조트였다. 나짱의 리조트 리셉션(굉장히 아름답게 만들어 놓은 곳)에서 30분마다 한대씩 보트가 출발하는데 5분 정도면 리조트가 있는 섬에 도착한다. 리조트 선착장에서 또 다시 오픈버스를 타고 5분정도 가면 리조트에 도착할 수 있는데 교통이 불편한 만큼 한적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섬 일부는 아직 케이블카 공사 등 한창 개발 중이었다. 조식포함 1박 105불, 이틀 예약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메콩강 투어를 취소하고 하루 더 연장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리조트에서만 이용하는 프라이빗 비치는 너무 예뻤고, 모래는 밀가루 같았다. 해변만 청소하는 분들이 하루 종일 조개껍질과 쓰레기를 주워내고 있어 발을 다치거나 쓰레기에 눈살을 찌푸릴 일도 없었다. 리조트 안의 수영장도 굉장히 크고 시간마다 아쿠아 에어로빅, 비치발리볼, 해양스포츠, 스파, 당구대, 탁구장, 자전거 타기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여 그저 만사를 잊고 푹 쉬기에 너무 좋았다. 객실 바닥도 마룻바닥인데다(개인적으로 카펫 싫어해서) 욕조도 굉장히 크고 샤워부스도 엄청 좋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것 다 잊고 또다시 수영장으로 바다로 뛰어다녔다.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산호는 없었지만 투명한 물고기, 모래무지, 흰색 게들도 많았다. 바닷 속을 걷다가 가끔 모래무지를 밟았는데 나도 물고기도 깜짝 놀랐다. 그 모래무지들 미안! 그때는 좀 아팠겠지만 지금은 괜찮겠지?

하루 종일 놀다가 또 쌀국수로 저녁을 먹고 방으로 가려는데 로비에서 가수들 공연이 있었다. 필리핀 가수였는데 미인인데다 그 무대 매너하며 노래 실력은 또한 굉장했다. 내일 보트 투어를 생각하면 얼른 가야겠지만 내일은 공연이 없다니 또 칵테일을 한잔 시키고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호주에서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노래를 신청하시고는 테이블 옆 공간에서 차차차, 왈츠 같은 가벼운 볼룸댄스를 추시는 것이 아닌가. 분위기는 달아오르고 보는 우리도 굉장히 흥겨웠다. 공연하는 가수들도 기분이 좋은지 열기는 더해가고, 흥겨운 리조트의 밤이었다.
춤추는 커플 중에 동양인 커플도 있었는데 남자분이 가수에게 몇 마디 하더니 흘러나오는 곡은 노사연의 ‘만남’이었다. 헉. 여행 중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즐기는 한국인을 만난 것은 참으로 드문 경험이다. 어쩌면 멋지게 부르는 ‘만남’을 라이브로 들으며 슬로우 댄스를 추는 그 부부는 정말 멋져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고 상황을 즐길 줄 아는 그 분들이 정말 멋있고, 그런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 모습이 참 아쉽다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만남’이 끝나자 우리 넷은 박수를 보내고 브라보를 외치고.. 춤은 못추니 같은 민족에게 보내는 정으로 그거라도 해야지 싶었다. 그리고 정말 멋진 모습이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있다가 우리 테이블로 맥주가 사람 수 대로 배달되었다. 그 한국분들이 인당 맥주 한잔씩 골든벨을 울린 것이었다. 이런 횡재가.. 그리고 그 즐길 줄 아는 여유가 너무 부러웠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가고 가수들도 공연을 마치고, 호주인들과 그 멋진 커플도도 다 방으로 가고 넷만 로비에서 남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한국 커플이 다시 내려오셔서 또 맥주를 사주신다. 몸둘 바를 모르게 미안했다.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호치민의 다이아몬드 플라자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었다. 교민은 아니고 서울에서 오가며 가게를 하시는데 베트남 청년들을 양자로 삼아 가게를 맡겨 놓고 믿으면서 장사를 하신단다. 그러다 여유가 나면 이렇게 유럽으로, 동남아로, 남미로 안다닌데 없이 여행을 다니신다는데, 이야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하시는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방으로 돌아와서 신랑과 둘이 피곤을 잊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금처럼 매일 12시에 퇴근하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신랑이 너무 안타깝고 그런데서 가족의 의미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동이 터 온다. 하루를 꼴딱 샌 것이다. 오늘 보트 투어는 못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