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서바스 2일째

아침식사 후 이시와 상이 자신의 영어회화반 사람들에게 우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지도교사도 없이 회원끼리 일주에 한번씩 만나 영어로 자유토론하는 회화반인데, 57세인 이시와 상 자신이 제일 젊다고 했다. 이시와 상의 차로 오이타 공민센타라는 곳으로 갔다. 우리나라 주민센타 같은 곳으로 주민들의 활동에 무료로 장소를 제공해 주는 곳 같았다. 2층 교실로 가니 백발의 할머니 한 분과 할아버지 두 분이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다 모인 class mate는 총 6인이었다. 그 중 몇 분을 소개하면,

테츠오 츠꾸다씨는 은퇴한 영어교사로 올해 80세라고 했다. 영어교사를 했지만 회화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 전에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가서 키위(뉴질랜드 인)집에서 민박하면서, 어린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영어를 배우고 왔다. 유화 그리는 것이 취미다. 운전면허기한이 만료되서 곧 갱신하러가야겠다고 말했다. 내 남편이 그를 보고, "당신은 젊어 보인다(You look young)" 고 하자, "아니 나는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젊다.( No, I am young.)"라고 답했다. 과연 장수국가 노인들은 사고방식부터 젊다.

카기코 아베씨는 눈부신 은발에 동그란 얼굴을 한 귀여운 할머니다. 여행과 책읽기와 에세이 쓰기가 취미다. 한국에 온 적은 없다. 3월에 만 79세가 된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소녀같다.

도시히꼬 이노씨는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왔다. 올해 만 72세로 서바스 회원이 된지 30년이나 되었고 규슈지부장을 지냈으며, 한국은 3번 방문했단다. 서바스 손님을 몇 번이나 호스트했느냐고 물으니 셀 수 없은데 아마 수백번은 했을 거라고 한다.

교꼬 사또씨는 올해 1살이라고 자신을 소개해서 농담인 줄 알았다. 실은 작년에 만 60세였는데 육십갑자로 말하면 자신이 태어난 해가 되어서, 올해는 만 1살이라는 것이다. 사또 상은 영어실력이 상당해서 우리나라 토플같은 시험에 거의 만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취미는 탁구인데 요즈음 탁구치는 재미에 푹빠져 매일 하루 2시간씩 친다. 조각보만드는 취미도 있다. 환갑을 넘긴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영어회화반에 오기 전에 노인들이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할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모두가 자기 의사를 불편없이 자유롭게 영어로 표현하는데 놀랐다. 그리고 대체로 실제 나이보다 10-15세정도 젊어 보였다. 행동이나 태도가 모두 젊은이 같았다. 한국과 일본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고, 영어회화반이다보니 자연히 영어학습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학교선생이었던 쯔구다씨가 교실에서 배운 영어를 빗댄 농담을 해서 모두가 웃었다.

한 일본인이 미국에 가서 교통사고를 만났다. 경찰이 다친 일본인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의사가,

"How are you?"라고 물으니, 일본인은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I a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일본사람이나 한국사람들에게 왜 영어가 이다지 배우기 어렵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얼마 전에 영자신문에서 읽은 재미있는 글을 그들에게 소개했다. 'Global English'라는 제목의 에세이인데, 필자의 주장은 제2외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 수가 모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인구 수를 능가한 지금은 미식영어나 영국식영어가 아닌 지구촌 영어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Global English에서는 예를 들어,

I study English eight year.

Thank you for come here.

I go to Seoul tomorrow.

He have a good time yesterday.

라는 등 문법에 안 맞는 영어를 말해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된다. 즉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너무 문법이나 발음이나 구문론에 신경을 쓰면 아무리 오래 영어를 배워도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표시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었다.

모임이 끝나고 차를 타고 점심식사를 하러 오이타 외곽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깔끔하고 자극이 없는 일본전통 음식이었다. 식사 후 우리가 먹은 음식 값을 지불하려고 하니 모두가 말렸다.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지만, 우리보다 나이 많은 3명의 노인들까지 해서 6명이 돈을 거둬서 우리에게 식사대접을 해주다니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헤어질 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베할머니가 그 작은 키에 발끝을 곧추 세우고 내 남편과 포옹하며 작별인사하는 모습이다. 얼마나 애교있고 귀엽던지 보는 사람 모두가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겨우 반나절 같이 보냈지만 우리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 모두가 상당한 수준의 인텔리들이지만 수수하고 겸손하고 진지하고, 무척 친절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이시와 상에게 감사한다.

오늘 저녁식사는 재료와 방법만 가르쳐 주면 내가 다 만들테니까 집에서 샤부샤부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잠깐 남편과 쇼핑을 하고 돌아오니, 이시와 상의 친구 3명이 모두 이시와 상의 지시에 따라 팔을 걷고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샤부샤부를 만들고 있었다. 웃으면서 수다를 떨면서 온갖 재료를 씻어서 썰고 있어서 내가 거들려고 하니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샤부샤부는 원래 일본어 '살랑살랑 찰랑찰랑 흔들다'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야채등을 넣고 팔팔 끓는 국물에 얇게 썬 고기를 살짝 익혀먹는 냄비요리라고 한다. 우리나라 식당에서도 먹어 본 적이 있지만 오이타식 샤부샤부는 만드는 법이 좀 특이했다 이시와상은 규슈식과 간사이 식이 다르다. 기름을 두르지 않은 달군 후라이팬에 기름이 약간 있는 얇게 썬 소고기를 넣어서 기름을 녹인다. 소고기는 근육사이에 눈처럼 하얀 지방이 켜켜이 들어있는 것이 최상등급이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내가 보기에는 소고기에 기름끼가 너무 많아 느끼할 것 같았다. 소고기가 익으면서 고기 사이사이의 기름이 녹았다. 거기다 깜짝 놀랄만큼 설탕을 듬뿍 넣었다. 고기가 익으면 한 곁으로 밀쳐놓고 썰어 놓은 무, 배추 버섯등 야채를 고기에서 나온 국물에 익혔다. 실곤약을 한쪽 옆에 넣고, 국물은 간장과 술을 넣고 가츠오부시는 넣지 않았다. 국물이 끓으면 후라이팬에서 익힌 소고기와 야채등을 넣고 잠시 끊이면 다 완성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사람에 1-2개의 아주 싱싱한 날계란을 깨트려 그 계란에 샤부샤부를 찍어 먹는 것이다. 만들 때는 비위가 상할 것 같던 음식이 의외로 맛이 있었다.

푸짐한 저녁식사를 즐기며 우리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들은 한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한국 탈랜트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 있었다. 이들은 대장금, 추노, 선덕여왕, 주몽 등 사극을 좋아하는데, 탈랜트들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도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듯한 스토리 전개가 너무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 한국드라마에 맛을 들이며 매니아가 되고 만단다. 동네마다 한국드라마 비디오 대여점이 있고, 매일 저녁 TV에서 한국드라마를 방영하는 시간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한국드라마에 열광하다보니 자연 한국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한글을 배우게 되었다. 오늘 초대받은 한 여성은 이미 4년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하는데 제법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한국 드라마를 자막없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우리에게 '비슷하다'와 '닮았다'의 단어사이에 어떤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시와 상도 매일 저녁 NHK라디오방송에서 15분씩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모두들 전자사전을 가지고 와서 단어를 찾아가며 한국어로 이야기 했다. 한국에서 뉴스로만 듣던 한류의 열기를 여기 오이타 40-50대 여성들에게서 실감하고 깜짝 놀랐다.

식사후, 이시와 상이 볶은 콩이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왔다 오늘이 세츠분( 節分)이라는 일본 민속명절이라고 했다. 마메마키라는 볶은 콩을 집밖으로 던지면서' 오니와 소토에(귀신은 밖으로)', 또 콩을 집안으로 던지면서 '후꾸와 우찌에(복은 집안으로)'라고 외치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내 남편보고 한번 해보라고 했다. 일본어를 모르는 남편은 반대로 콩을 집 안으로 던지면서 '오니와 소토'에 라고 말하고, 이번에는 콩을 밖으로 던지면서 '후꾸와 우찌에' 라고 안과 밖을 뒤바꿔 말해서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시와 상의 친구가 우리에게 과자 한 상자를 선물했다. 그녀는 서바스회원도 아닌데 처음보는 우리를 위해 이렇게 선물까지 준비하다니 감동했다.

내일의 일정에 대해 이시와 상과 의논했다. 아침 8시 19분이나 8시 39분기차를 타고 유후인으로 가서 거기서 관광과 온천욕을 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구마모토로 가서 다음 서바스 호스트인 이즈미 상을 만나기로 일정을 잡았다. 오이타 역까지는 이시와 상의 집에서 2Km정도 밖에 안되고 차로 10분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해서 이시와 상이 역까지만 우리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이시와 상이 오이타에서 유후인으로 가는 열차이름, 그리고 구마모토행 열차시간과 중간에 갈아 탈 역이름을 상세히 적은 종이를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는 내일은 공교롭게도 역 부근에 도로공사가 있고 마침 러시아워이기 때문에 차가 막히면 2Km가는데 30-40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기가 직접 운전해서 유후인까지 우리를 데려다 주겠다고 말을 바꿨다. 고속도로를 한시간 가량 운전해가서 우리를 유후인에 내려주고, 당신 혼자 집으로 돌아와야하니 너무 폐가 많다고 우리는 극구 사양했다. 이시와 상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깔깔 웃으면서, 유후인까지 운전해가는 것은 나에게는 'a piece of cake'(식은 죽먹기예요)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역까지 2Km쯤 걸어가는 것은 우리에게도 'a piece of cake' 라고 받아쳤다. 우리는 한참 서로 언쟁아닌 언쟁을 했다. 옆에 있던 이시와 상의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시와 상의 편을 들어 우리들을 유후인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편이 낫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더 이상 그녀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내일 아침 유후인까지 그녀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