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홋가이도 여행기 2

Kim Youngsook 2004-07-11 (일) 16:53 조회:1864

4. 스가와라 미와코 선생
다카하시선생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 다음 방문한 곳은 쿠찬시. 호스트를 자원한 스가와라 미와 코선생이 딸 '유리'와 함께 역에 마중을 나왔습니다. 올해 51세인 그녀는 과거 남미의 코스타리카에서 3년간 일본어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답니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안 북한과 중앙아시아를 빼놓고 전세계 나라를 거의 다 여행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아마 무선사여서 서바스회원 외에도 전세계에 친구가 많고, 한국에도 여러 번 와서 지금도 서로 연락하는 한국친구들이 있답니다. 그녀는 37살 때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여 슬하에 10살이 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주위의 친구들은 싱글로서 전세계를 돌아 다니며 하고 싶은 여행 실컷하다가 결혼도 하고 딸도 낳은 그녀를 보고 정말 복 많은 여자라고 부러워 한답니다.
그녀의 산뜻한 이층 집 거실에는 벽돌페치카가 있고, 마루에는 푹신푹신한 카페트가 깔려 있고, 문을 열자,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가 났습니다. 뒤죽박죽인 다카하시선생집 거실에서 마음 편하게 퍼질고 앉아서 수다를 떨다가 온 나는 스가와라선생의 집에 오니 너무 청결해서 좀 조심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친정어머니 쯔루상를 소개해주며, 우리 어머니는 쓸고 닦는 것이 취미라서 오지 말래도 주중에 와서 내 집안 일을 해주고 주말에 당신의 집으로 돌아가시는데, 정말 어머니가 아니면 내가 아이를 키우고 학교선생을 계속할 수 없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그녀는 두툼한 공책을 여러 권 가져 왔습니다. 1975년도 한국여행과 1980년도 부터 81년사이 설악산과 부여등지를 여행한 일기장이었습니다. 우선 그녀의 일본어 필체가 인쇄한 글씨보다 더 아름다웠고, 군데 군데 펜으로 스케취한 한국의 산천과 풍물그림이 아주 멋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한국 여행 때 모아 둔 관람권, 환전표, 심지어는 버스표, 극장 광고 같은 것도 노트 군데군데 붙여 놓아서 한국인인 나에게도 옛날의 정취를 불러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림이 곁들여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을 연상케하는 일기장이었습니다. 스가와라선생에게 혹시 그림을 전공했느냐고 물으니 그냥 혼자서 취미로 그려 봤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이 기록에 능하다는 것은 전부터 유명하지만, 작가도 아닌 평범한 여교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여행기를 이렇게 멋지게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다는 것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저는 세계 30여개국을 여행했지만 기록을 하지 않아서 소중한 추억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혀져가고 있는데, 이제부터라도 기행문을 써가며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 저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은 그녀의 조그만 스크랩북이었습니다. 그녀는 가므스름한 얼굴에 두눈이 초롱초롱한 한 아기의 사진을 가리키면서 그 아기가 베트남에 있는 자신의 2살짜리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스크랩북에는 그 아기의 부모로 부터 온 편지와 그리고 아기의 신상에 대한 모든 기록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국제 foster parents 단체에 소속되어,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어린이를 지정해서 매달 얼마간의 생활비와 교육비를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자선 단체에 돈을 기부하면 내돈이 누구를 돕는지 또는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모르게 되는데, 이 단체는 후원자가 어떤 특정 아이를 지정해서 그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도와주며,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선행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현재 많은 일본인들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스가와라선생에게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과거의 역사 때문에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스가와라상과 같이 인류애를 실천하는 일본인들을 만나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foster parents 뿐 아니라 서바스호스트로서 20년도 넘게 봉사해 오고 있습니다. 매년 쿠찬시에서 거행되는 세계 재즈패스티발 기간 중에는 해마다 대회에 참가하는 외국학생들을 집으로 데려다 무료숙식을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그녀는 또 TM(초월명상)에 관심이 많아 매일 아침에 20분 자기 전에 20분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저도 네팔에서 명상하는 법을 배워왔지만 초월명상은 어떤 명상인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스스로 체험해봐야 하면서 여행중에 읽어 보라고 제게 명상에 관한 책을 한권 선물로 주었습니다. 여행, 봉사, 명상 -이런 끊임없는 자기 수련를 해서인지, 손님인 나에 대한 그녀의 환대는 지나침이 없이 덤덤하면서도 자연스러워서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습니다.

5. 도요국민학교에서
스가와라선생은 저에게 자신의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도 한국에 대한 수업을 3시간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긴잔중학교에서는 지도 한장을 걸어 놓고 이야기만으로 3시간 수업을 할 수 있었지만, 고교교사 경험밖에 없는 제가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분필과 칠판 그리고 말로만 수업을 하다가 아이들이 지루해져서 장난을 치거나 하품을 하면 어쩌나, 거절하고 싶은데 그녀의 환대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거절할 수도 없고, 고민하고 있는데, 스가와라선생이 봉지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속에는 한복 한벌(딸의 것) 과 소고, 제기 그리고 조각보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스가와라선생이 한국여행 때 사온 것이 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만 있으면 45분짜리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도요국민학교에 도착해서 우선 교무실에 가서 교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7월에 교직원이 서울로 2박3일 단체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모두가 처음 한국을 가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몹씨 알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교사는 같은 시간대라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하는데, '난타'공연과 '민속공연'중 어느 것을 추천하겠느냐는 난처한 질문을 해왔습니다. 1교시는 교장선생님 안내로 학교시설을 둘러 보았습니다. 성악이 전공이신 교장선생님은 큰 강당겸 채육관 벽에 붙어 있는 도요국민학교 교가의 가사를 보고, 교가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빛나는 산을 바라보며 즐겁게 함께 공부하는 자랑스런 도요에 초록색 바람이 불어 온다...'라는 가사가 너무 멋이 있었습니다. 긴잔중학교보다 훨씬 학교교사가 크고 시설도 좋았습니다. 2교시 부터 저는 연달아 1학년생, 4학년생, 그리고 6학년생에게 한국에 대한 수업을 해 주었습니다. 큰 교실에서 2반씩 합반으로 수업을 했습니다. 물론 세계지도를 걸어 놓고, 우선 한국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한글로 칠판에 간단한 인사말을 적었습니다. 아이들은 와아 한글 쓰기 어렵다하면서 웅성거렸습니다. 저는 한글은 너무나 배우기 쉬워서 반나절이면 알파벧을 다 배울 수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은 한 여자 아이를 불러 내어 한복을 입혀주면서 한복입는 법을 보여주고, 이어서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본어 음을 칠판에 적어 놓고 여러차례 따라 부르게 한 후 다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또 제가 어렸을 때 배운 한국춤을 기억해 내어 한국춤의 발동작과 팔동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다같이 아리랑노래를 부르면서 교실 앞뒤로 움직이며 한국춤을 추었습니다. 제기차기를 가르쳐 주고 희망자에게 나와서 제기를 차보라고 하니 2번 이상 차는 아이들이 없고 , 어떤 아이는 발등으로 제기를 차더군요.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눈치들이었습니다. 소고로 박자치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각보를 가지고 용도를 묻는 20고개를 내 주고 맞춘 어린이에게 다 같이 박수를 쳐주도록 했습니다. 꼭같은 내용으로 3시간 연달아 수업을 하고 나니 목이 쉬고 온 몸이 땀에 젖어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일본여행하러 왔다가 팔자에도 없는 국민학교교사 노릇을 하느라, 숫기없는 제가 엉터리 고전무용까지 해가며 완전히 원맨쇼를 하게 되다니! 스가와라선생이 약간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하고, 6학년 학생들의 교실로 가서 학생들과 학교급식을 먹었습니다. 에이프런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배식을 하는 당번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급식은 별로 맛이 없었지만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배려한 건강식이었습니다.
저의 다음 행선지는 도야고였는데 스가와라 선생이 자신의 차로 도야고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가는 도중 꾸벅꾸벅 조는 저를 보고 그녀도 3시간의 수업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힘든 경험도 언젠가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며 회상하게 될 추억꺼리의 하나가 되겠지요.
스가와라 선생은 도야고를 지나 일부러 쇼와진잔까지 가서 저에게 화산을 구경시켜주고 , 다시 도야고로 와서 자신이 인터넷으로 찾아 예약해 준 가와나미 호텔 방까지 따라 들어와 내가 묵을 방이 어떤지 염려해 주었습니다. 여행스케쥴 때문에 그녀의 집에는 하루 밖에 묵을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정신적인 자산을 많이 가진 여성인것 같았는데, 겨우 하루 저녁 밖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서바스의 규칙대로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알고 정을 느끼기에는 한집에 하루 밤은 너무 짧고 최소한 2박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경자: 제가 여행에 동참한듯 너무나 자세하며 따뜻한 여행이야기입니다. -[07/11-22:15]-

so young Ahn: 민간외교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하셨네요... 세 시간씩이나 한국에 대한 수업를 하셨다니 ... 놀랍습니다 서바스 회원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땐 한국에 대한 소개 등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는 사전 준비 도 좀 필요하겠단 생각이 드네요... ^ ^ -[07/12-13:27]-

박정희/Jung Hee, Par: 이 글을 올리신 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여행중에 만나신 일본인분들도 배울 점이 참 많군요. 역시 여행만한 교육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07/12-16:13]-

문건주: 반일교육을 받은 구세대로 일러 구사가 어려워 일본여행이 어려운데 일어와 영어를 사용해 학교 강단에서 어린이들에게 값진 수업을 베푸신 내용이 제겐 가장 부러운 경험으로 높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서울에 오시는 기회 았으시면 직접 만나 일본의 체험담을 더 들어 보고 싶습니다. 서울에 오시는 경우 연락주시길 기대합니다. -[07/13-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