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홋가이도여행기 4

Kim Youngsook 2004-07-23 (금) 17:57 조회:2408

카노 에츠코선생님 가족들과 함께

쿠시로에서 삿뽀로로 돌아 온 귀국 하루 전날 밤은 이번 저의 서바스 여행의 high-light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처럼 삿뽀로 역에서 에츠코선생과 다카후미군을 만나, 제가 다카후미군과 피자를 사주기로 약속한대로, 우리 셋은 피자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카후미군은 오후에 축구시합이 있어서 운동장으로 가고, 저와 에츠코선생은 그녀의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로 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 키요노 고바야시씨는 문화교실에서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그녀는 올해 78세라는데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미인이었습니다. 제가 에츠코 선생과 그녀를 방문했을 때, 마침 한국유학생인 이봉양에게 기모노를 입혀주는 중이었습니다. 홋가이도 대학에서 일본문학박사학위를 하고 있다는 이봉양은 기모노가 너무 우아하게 잘 어울리고 일본말도 유창했습니다. 고바야시선생이 저에게도 기모노를 권하시길래 사실 저는 내키지 않았지만 입혀 달라고 했습니다. 외국인에게 일본문화를 보여 주려는 진지하고 열성적인 그녀의 제의를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만 입어도 반드시 세탁해야 한다는 흰 속옷을 먼저 입혀주고 기모노를 입히고 오비로 가슴을 꽉 졸라매니 숨이 콱 막혔습니다. 날씨마저 후덥지근해서 오비를 졸라 매주는 고바야시 선생님 얼굴에도 땀이 송송 맺혔습니다. 저는 5분도 안되어 기모노를 벗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이양에게 한국말로 저녁식사 때까지 이걸 입고 있어야 한다니 도무지 갑갑해서 밥을 먹을 수가 없을 것같다. 조금있다가 벗겠다고 말하면 안될까? 라고 물으니 예의상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속사정도 모르고 에츠코선생은 제가 입은 기모노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계속 카메라 샷타를 눌러댔습니다. 기모노를 입은 우리 두사람를 다다미 방에 꿇어 앉히고, 고바야시 선생님은 먼저 '다도 꽃꽂이'를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조그만 화병 3개에다 서너가지의 꽃을 꽂아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꽃꽂이를 완성해 보였습니다. 다석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차와 함께 꽃도 감상한다고 했습니다. 고바야시선생은 찻잔에 녹색가루를 넣고 전기로 된 화로에서 차 주전자를 들어 물을 붓고, 와센이란 대나무 솔로 차를 저어서 완전히 초록색물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손님을 향하여 다소곳이 찻잔을 권하는 법, 손님으로서 차잔을 받아서 마시는 법을 시범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다기를 놓은 자리며, 다기닦는 작은 수건 사용법, 등등 다도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세세히 반복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한번 보고 따라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녀의 집에는 은근한 색채와 무늬의 각가지 다기와 주전자 등등의 다도 도구가 즐비했는데, 그만큼 고급스런 도구를 갖추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 것같았습니다. 다도란 선의 영향을 받아 조용하고 차분한 정취를 즐기는 소박한 취미로 알고 있었는데, 차도구를 보니, 다도에는 다분히 사치스럽고, 귀족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꽃꽂이에다 멋진 다구들, 향기로운 차 ,그리고 마음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다석을 상상해보니 요즘같이 생계에 바쁜 도회서민들에게 그런 여유가 있을까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고바야시선생의 문화교실에는 어떤 사람들이 다도를 배우러 오느냐고 물으니, 일본에서는 전통있는 가문의 규수들은 결혼 전에는 다도를 배운다고 합니다 . 어째튼 기모노나 다도는 제 취향은 아니였지만, 고바야시 선생님의 호의로 일본문화체험을 공짜로한 셈입니다. 저는, 한 나라 문화와 다른 나라 문화는 절대로 서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색깔이 이 다른 꽃처럼 각 나라 문화는 나라나름의 전통과 멋이 있는 것이니까 다 존중해야 한다고 다도에 대한 저의 소감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도를 가르쳐주신 답례로 한국에서 선물로 가져간 길이 1m가 넘는 학이 새겨진 매듭을 고바야시선생님 거실에 걸어 드렸습니다.
고바야시선생님의 아파트 윗층에 사는 그녀의 딸이자 에츠코선생의 여동생인 쇼코 사토선생이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었습니다.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이 남아 에츠코선생의 아이디어로 기모노를 입고 외출를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쇼핑센타에가서 우유, 낫또 등을 샀습니다. 쇼핑하러 온 일본인들은 아무도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쇼핑에서 돌아와 저는 기여코 기모노를 입고 저녁을 먹다가 음식물이 묻을까봐 걱정된다고 핑게아니 핑게를 대면서, 그 갑갑한 기모노를 벗을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쇼코 사토 선생 부부도 언니네와 마찬가지로 국민학교 부부교사입니다. 슬하에 중학에 다니는 에야카라는 예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쇼코 사토선생은 홋가이도 약대를 나온 재원으로, 병원조제실에서 일하다가 약사 일이 싫어서 다시 교원자격증을 따서 지금은 국민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교사 자격증까지 있다고 합니다. 쇼코 사토 선생의 남편인 마사시 사토선생은 갸날픈 아내와는 딴판으로 약간 뚱뚱한 편인데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너무 호감이 가는 분이였습니다. 양쪽 집 식구 6명, 그리고 어머니인 고바야시선생, 나, 이양, 이렇게 9명이 모여 저녁을 먹으며 담소하였습니다. 여자 넷은 식탁에 앉고 남편들과 아이들은 교자상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맥주를 한잔 씩 마시자 온갖 화제가 다 나왔습니다. 여자들이 모인 식탁에서는 일본사회의 남녀불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가정 안에서는 여자의 영향력이 크지만 아직 사회에서는 승진이나 봉급등에서 여성차별이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좋아졌지만 고바야시선생의 두딸이 교원생활을 시작할 때는 기혼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바야시선생이 자신의 일을 접어버리고 두딸 의 아이들을 맡아서 길러주었답니다. 그녀 덕분에, 오늘까지 두딸이 교사로서의 직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바야시 선생님은 맥주 몇잔으로 취기가 들어서인지 다도할 때의 단정한 모습과는 전혀 딴 모습을 보였는데, 화통한 할머니로 변해서, 두딸에게 눈을 장난스럽게 흘기시면서, "외손자 외손녀 기른다고 내가 몇년을 바쳤는데 지금 생각하니 쿠야시이(분하다), 쿠야시이"라고 말했습니다. 두딸은, "어머니, 미안해요, 우리가 잘 해 드리고 있잖아요".라고 애교를 부렸습니다. 어머니는, "농담이야 그래그래 너희들이 잘 사니까 내가 한 수고가 보람이 있어."라고 웃었습니다. 그녀는 사위들이 너무 착하기 때문에 아들은 없지만 사위들이 아들보다 더 낫다고 두 사위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이양이 갑자기 사토씨가 배용준이를 너무 닮았다고 말하자, 모두들 사토선생에게 시선을 돌리며,"그러고 보니 정말 욘사마 닮았군"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고바야시 선생은 '어이, 홋가이도 묜사마'하고 작은 사위를 큰 소리로 불러보고는 깔깔 웃으셨습니다.
식탁에는 쇼코선생이 만든 쓰끼야끼가 계속 나오고 화제는 점점 더 무르익어갔습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드라마 ' 겨울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나는 일본에서 그 드라마에 왜 그토록 열광하느냐 고 그들에게 물으니, 일본인들이 여태까지 접해보지 못한 순수한 러브스토리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스포츠이든 연예오락물이든 어떤 형태로든 최근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가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TV에 이락에서 납치되어 피살당한 김선일씨에 관한 뉴스가 나오자 ,화제는 정치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납치사건으로 한국내 정치적 갈등이 더 심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을 해주고는 한국사람들의 촛불시위를 자기들은 이해 할 수없다고 했습니다. 유학생 이양은, "아마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국민성의 차이인가 봅니다.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일본인들은 감정표현을 지극히 절제하고 있기 때문에 도대체 국민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한국처럼 온 국민이 거리에 뛰어나와 시위를 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인들은 거리에서 자동차 접촉사고가 일어나면 한국에서 처럼 서로 언성을 높히고 삿대질을 하는 법이 없고 순경을 불러 와 상황을 이갸기하고 순경의 판단을 수용하고 서로의 차번호를 적고 조용히 헤어집니다. "라고 한국과 일본인의 다른 점을 지적했습니다.
함께 기념촬영도 하고 식후 다과도 먹고 밤 9시가 넘자, 저는 카도씨 가족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외국인을 이렇게 가족같이 허물없이 대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고바야시선생과 샤토씨 부부가 우리를 배웅하면서 다음에는 겨울에 홋가이도에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어느 일본수필가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친절'이란 수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절세가인의 얼굴도 아니요, 자연의 비경도 아니다. 자신이 어려운 전후 시기에 세계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여행중에 어디서 굴러먹던 개뻑다귀인지도 모르는 자신을 무상으로 재워주고 먹여 주며 친절을 베풀어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보상을 바라지 않는 친절이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번 서바스여행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푸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는 홋가이도회원들에게 받은 환대를 저희 집에 오는 다른 회원들에게 돌려 주고 싶습니다. 서바스의 환대와 친절은 이처럼 전세계를 돌고 도는 것입니다. 끝

문건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일어구사를 할 수 있다면 일본사람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으련만- -[07/28-02:49]-

Kim Myungjung: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순수한 마음의 교류가 저에게도 그대로 느껴지는군요. 앞으로도 서바스여행을 자주해서 재미있는 여행기를 써 주십시요. 김명정 -[08/04-20:12]-

신종순 2008-07-25 00:20	아...이글을 좀더 빨리 읽었더라면... 전 낼 모레 무작정 홋가이도로 떠납니다. 글 정말 잘읽었습니다. 훌륭한 여행을 하셨네요.....호스트나...님이나... 따뜻한 마음 전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