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유고집으로 출간된 노란집을 읽으며 앞에서 언급했듯이 영국행을 하게되면 반드시 브론테 자매의 생가를 찾아보겠다고 작심한바 있었다.

<노란집>에서 다루워진 내용중 본인이 다녀온 곳과 관련되어 기술된 작가의 기행문의 일부를 옮겨본다

90년대 초 브론테 가의 묘지와 생가가 보존돼 있는 요크셔 지방의 하워드 마을을 여행하게되었다. 속칭 무어(moor) 지방이라고 부르는 황량한 고장은 7월인데도 두툼한 스웨터를 껴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낮았으나 <폭풍의 언덕의>의 엔셔가의 아이들이 뛰어놀았을것 같은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브론테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박명한 자매들을 온갖 방법으로 상품화한 기념가게, 식당들이 번창하고 있었다. 자매의 이름이나 초상이 새겨진 스푼이나 냅킨은 기본이고 음식도 브론테 핫도그, 브론테 파이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알뜰하게 옭아먹으면서도 상가가 천박하지 않은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했다. ----장사꾼들의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문화사업이라도 하고 있는것 같은 긍지를 가지고 있기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밤새도록 비도 뿌리고 바람도 불었다. 황무지를 거침없이 횡횡하고나서 뒷문을 흔드는 바람소리에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동물적인게 솎여 있어 창문만 열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긴 그림자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그들은 왜그렇게 영원한가? 나는 잠을 잘 못이루고 뒤쳑거렸다.

책한권도 자유롭게 사 볼 수 없어서 소녀시절 시험공부를 희생하고 까지 빌려온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내 생전에 그 Wuthering Heights의 현장에 이;르게 될줄을 어찌 꿈이아 꾸었을까?

그러나 나는 지금 공간뿐 아니라 시간까지 거스른 것처럼 그 시대가 고스란히 정지돼 있는, 그 동네에 와 있는 것이다. 가슴 설레는 동경없이,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나는 나에게 물었고 , 동경없이 어떻게 행복할수 있겠느냐고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늙었고 아무데나 헤집고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한국사람에 불과하다는 게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황무지 체험을 위해 아이들까지 데리고 떠나는 몇몇 가족을 따라갈 염두를 내진 않았다. 갈길이 바쁘다는 한국사람 특유의 조급증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열심히 브론테자매의 문학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그들이 체험하고자 하는 게 단지 히드밖에 못자라는 황무지가 아니라 자유분방한 캐서린과 짚념깊은 히스클리프의 악령이 씌운것 같은 운명적인 사랑의 자취일 테니까, 브론테 자매의 문학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렇게 허풍을 떠나, 약간은 아니꼽게 보인것도 아마 변방의 언어를 모국어로 가진 작가의 꼬인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내가 소녀적에 밤새워 읽은 것은 일본말로 완역된 거였다 나는1800단어 내에서 요약된 제일 수준낮은 <폭풍의 언덕>을 사서 보았다. 이건 영어이긴 해도 대강의 줄거리만 아주 쉽게 단순화 시켜놓은 그림책이었다. 이를테면 피와 살을 다떼버리고뼈대만 남은거였다.

나는 이소설에서 아무리 다 털어내도 사랑의 집념만은 남아 있을줄 알았다. 그러나 이 어린이용 동화책에서 내가 발견한 건 그 무렵 영국사회의 관습과 상속법, 그리고 뿌리 없는 젊은이가 상류사회에 뿌리 내리기 위한 용의주도한 계략과 재산과 신분에 대한 집념이었다.

히스클리프를 움직인 원동력이 지독한 사랑이 아니라 돈과 복수심으로 읽힌 것은 내 나이 탓이었을까, 아니면 소녀적의 독서가 오독이나 착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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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생가와 마을 그리고 무덤 교회를 답사한 후 관심을 둔 곳은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이었다. 히드만이 자라는 황무지에대한 관찰을 상세히 하면서 만약 박 완서 작가가 시인이었더라면 바닷처럼 넘실거리는 광활한 히이스Hearth: 키가 작은 관목)의 잎과 꽃들이

어울려 Heather(헤더)라고 불리우는 보라색과 분홍색 작은 알맹이들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보고 시 한수를 읖조릴수 있었을텐데 그곳까지 가서 무어랜드(황무지) 답사를 하지 않은 것은 잘못 판단하였던 것으로 아쉽게 여겨졌다.

박 완서 작가는 1931년 생으로 이 브론테 생가를 방문한 해가 90년대 초이므로 아마도 환갑 지난 초노인으로 지금같아선 노인측에도 끼지 않을 나이인데 그당시 자신을 너무 늙게 보았던 것이 20여년전으로 70대 중반을 넘어선 우리가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하지않고 있는게 정말 우리가 좋은 시대에 사고 있다고 자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