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바스

넷째 날(1.13)

강성호(kang sung-ho) 2005-02-25 (금) 13:08 조회:1416

넷째 날(1. 13 목)
사흘 동안 머물렀던 히사시 선생님 댁을 떠나는 날 아침. 서재에서 영문판 아사히신문을 읽고 계시던 선생님께서 화난 목소리로 어떤 기사를 보라며 건네 주셨습니다. 2001년 1월 위안부문제를 다룬 NHK특집다큐 방영직전 자민당 아베 간사장 등이 편향된 내용이라며 시정을 요구하여 취재내용과 다른 방송을 내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기사였습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평소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에 관심을 쏟고 계신지를 알게 되어 이런 기사에 화를 내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사가대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59년 교직생활을 시작, 96년 퇴직 때까지 36년간 나가사키현내 고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면서 민주 ․ 인권교육 위해 헌신 해 오신 분이였습니다. 이런 교단경험을 살려 두 권의 교육소설을 발표하였고 일본민주주의문학동맹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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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 92년 12월에는 나가사키현내 고교교사 40명을 이끌고 우리나라를 직접 방문하여 종군위안부 할머니로부터 증언을 듣는 역사탐방단을 추진하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93년 7월에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자 교사역사탐방단의 경험담을 모은 ‘지금, 왜 한국여행인가? -종군위안부의 증언을 듣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하셨습니다.
97년 퇴직 후에는 전국연금생활자회 지역모임을 이끌며 평화와 인권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오고 계십니다.
servas를 통해 이런 분과 만나고 교류를 갖게 되어 저로는 무엇보다도 큰 감동과 자극을 받았습니다. 진정한 한일 우호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14:47
히사시 선생님 댁을 떠나 사세보역에서 다음 목적지인 히젠후모토를 향하였습니다.
(2시간 2분1,600엔)
사세보 역을 출발 하이키를 거쳐 히젠후모토 역까지 가는 보통 열차는 도중에 하교하는 학생들로 붐빌 뿐 승객도 적어 느긋한 마음으로 차장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감상하였습니다.
16:49
기차에서 내리니 사세보 출발 때 통화한 내용 그대로 역장 한 명이 근무하고 보통열차만 정차하는 아주 작은 시골역이였습니다.
혼자 내린 역을 빠져 나오니 니시야마 선생님 사모님께서 인자한 웃음으로 반겨주셨습니다.
선생님 댁은 역에서 불과 5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길가에 있었습니다.
2층으로 된 전형적인 일본식주택으로 주위는 작은 텃밭들이 있는 조용하고 작은 동네여서 처음 왔지만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50
늦게 퇴근하신 니시야마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커다란 도자기 냄비그릇에 배추와 표고를 넣고 생선회를 살짝 익혀 국물과 함께 먹은 요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명란젓에 참기름을 두른 요리는 처음 먹어 보았지만 입에 맞았습니다. 후쿠오카지방에서는 명란젓이 명물로 보통 그냥 먹지만 사모님께서 한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배운 방식으로 즐겨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니시야마 선생님께서는 사가단기여자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시다 정년퇴직 후 지금은 계약직으로 강의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랜 servas 활동 경험에서인지 상대방을 배려하며 또박또박하고 차분한 발음으로 대화를 이끌어 주셔서 흡사 개인지도를 받는 듯 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한국 servas회원과 교류 때 찍은 사진과 파일을 보여 주시면서 너무나 좋은 추억을 간직하게 되어 늘 우리나라를 마음으로부터 아끼고 이해하며 지내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방문해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 댁에서 홈스테이한 여러분들의 사진과 기록을 일정별로 빠짐없이 기록해둔 파일 철을 소중히 보관하고 계셨습니다.

사모님께서도 소학교 1학년 무렵 친분을 나누던 한국인에 대한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당시 미야키중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 아버님을 따라 하카바루역 부근에 살던 시절, 바로 이웃에 살던 하치로 상이라 불리던 조선인 가족과 친하게 지내며 닭을 키우고 밭일을 같이 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하셨습니다.
해방이 되어 한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몇 차례 편지 왕래가 이어 졌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며 지금도 하치로 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릴 적 일들이 되살아난다는 이야기 끝에 잠시 눈가를 적셨습니다. 겨울연가 드라마를 보지는 않고 있지만 훨씬 이전부터 한국과 한국문화를 아끼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따끈한 온돌방과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에서 느끼는 한국식 정취를 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밤 11시 가까이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층에 마련해 주신 방으로 돌아 와 잠자리에 들려다 보니 책상위에 낯익은 책이 보였습니다. 이와나미서점에서 일본어로 출간한 황석영의 소설 ‘아름다운 정원’이였습니다. 저자신도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을 일본가정에서 보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점자도서관협의회 라벨이 붙은 녹음기가 함께 있어 사모님께서 장애인을 위한 낭독용으로 구입하신 게 아닐까 짐작해 보았습니다.